ADVERTISEMENT

평화와 번영의 축제 「아시안 게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광활한 대륙 아시아-.
동경 35도에서 1백50도까지, 북위 46도에서 남위 10도까지 거대하게 자리잡은 아시아 대륙은 지구 육지 면적의 3분의1을 차지하고 있을뿐 아니라 전세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5억명을 식구로 거느리고 있다.
「영원한 전진」을 모토로 내걸고 4년마다 개최되는 아시안게임은 이 거대한 대륙에 동질성을 심어주고 단절과 번영에의 의지를 북돋워주는 전 아시아인의 종합스포츠 축제다.
극동·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동등 지역별로 인종·생활습관·국력이 판이하게 차이나는 아시아 제국이 한마당에 모여 함께 뛰고 어우러져 한가족의 축제를 벌이는 기회는 아시안게임 뿐이다.
아시안게임의 모체는 극동선수권대회.
필리핀· 중국· 일본등 3개국의 주창으로 발족한 이 대회는 191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1회 대회를 개최한 뒤 격년제로 10회까지 치르고 해체됐다.
오늘날과 같은 아시안게임의 창설 움직임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싹트기 시작, 인도의 IOC위원 「손디」 씨의 산파역할로 50년 결실을 맺었다.
인도· 파키스탄등 서남아 국가들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경기연맹 (AGF)을 창설하고 첫 대회를 이듬해 인도의 뉴델리에서 갖게 된 것이다.
아시안게임을 외면해 오던 중동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74년 제7회 테헤란대회 때부터. 이때부터 중공과 북한도 아시아 가족의 대열에 합류했다.
7O년대에 불어닥친 오일달러의 바람을 등에 업은 중동국가들은 아시안게임에 대한 주도권을 서서히 장악, 마침내 82년12월 AGF가 사라지고 중동주도의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 (OCA) 가 들어서게 되었다.
아시안게임의 주도세력이 최초 동남아에서 서남아로, 다시 중동으로 서진해 나간 것이 자못 흥미롭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의 성적에 관한 한 단연 극동쪽이 우세하다.
중공· 일본· 한국이 아시안게임의 메달을 거의 휩쓸어 중동을 비룻한 그밖의 나라들은 사실상 들러리 역에 지나지 않는다.
아시안게임 3회 출전만에 왕좌를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은 중공은 그 막강한 경기력과 활발한 스포츠 외교등으로 아시안게임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했다.
9월의 대회전을 벼르며 서울에 모여들 아시아 국가는 모두 28개국.
이중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버마등 6개국은 첫 대회때부터 빠짐없이 참가한 개근생들이다.
OCA의 회원국은 현재 모두 36개국.
이중 북한을 비롯, 베트남·몽고· 라오스· 아프가니스탄·남예멘등은 불참하는 것으로알려졌으며 브루네이·북예멘등은 아직도 참가여부가 불확실하다.
회원국 가운데 아시안게임을 한번이라도 개최한 나라는 인도·태국·필리핀·일본· 인도네시아· 이란등 6개국이며 이중 태국은 3번, 인도는 2번씩 대회를 개최했다. 한국은 70년 제6회 대회를 유치했다가 국내사정으로 반납, 이제 l6년 뒤에 그 불명예를 씻고 뜻을 이루게 됐다.
참가국중 가장 많은 선수단을 내보내는 나라는 역시 주최국인 한국으로 25개 전 종목에 6백73명이며 선수단 규모가 가장 작은 나라는 맬다이브로 탁구 한 종목 7명에 불과하다.
출전국중 가장 부국은 카타르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천7백20달러이며 가장 빈국은 부탄으로 1인당 80달러. 한국은 10위에 해당된다.
인구로는 중공이 10억, 인도가 7억, 인도네시아가 1억5천만, 일본이 1억1천만명이며 한국은 4천만명으로 9번째.
인구와 경제력을 종합 비교한 스포츠 수준으로는 한극이 가장 앞서 있다고 할수 있다.
인도에서 첫 불을 밝힌 아시안게임 성화는 마닐라→도쿄→자카르타를 거쳐 방콕에서 머물다가 테헤란에 건너갔으며 이어 뉴델리→서울로 이어졌다. 다음엔 처음 중국대륙에 들어가 90년 북경에서「영원한 전진」 의 물결이 펼쳐진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제3세계. 그런점에서 서울아시안게임은 아시아 가족 모두의 긍지이자 보람이며 희망이기도 하다. <김동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