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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중동 평화 이끈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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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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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페레스 당시 이스라엘 외무장관(왼쪽)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도와 중동 지역 평화를 이끌어낸 공로로 19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3세.

시몬 페레스 전 대통령 별세
아라파트와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
말년엔 스타트업 육성에 힘쏟기도

AP통신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병원에서 뇌졸중 치료를 받던 페레스가 이날 오전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그는 뛰어난 협상력과 선견지명으로 현대 이스라엘의 초석을 닦은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페레스는 1923년 폴란드의 작은 마을 비시네바(현 벨라루스)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34년 가족과 함께 당시 영국령 팔레스타인이던 텔아비브로 이주했고, 18세의 나이에 진보 성향 유대계 정치 운동인 이스라엘청년협회의 대표를 맡으며 이스라엘 건국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2014년 대통령에서 물러나 정계를 떠날 때까지 60여 년간 국방장관, 외무장관, 재무장관 등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고 두 차례 총리직을 역임했다.

그는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적대 세력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이 살아남을 길은 기술 혁신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52년, 29세의 나이로 국방 총국장에 임명된 페레스는 항공기 국내 생산을 위해 국영 항공사 베덱을 설립했다. 당시 이스라엘 내부에선 “ 자전거도 못 만드는 우리가 무슨 항공기를 제조하느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페레스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스라엘 기술자 앨 쉬머를 데려와 베덱 을 맡겼다. 설립 7년 뒤 베덱은 이스라엘 최초의 훈련기 ‘추킷’ 생산을 시작했다. 추킷은 향후 50여 년간 이스라엘 공군의 훈련기로 투입됐고, 베덱은 이스라엘 최대 방산업체인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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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페레스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60년대 초반엔 자국 내 인재들을 프랑스로 보내 핵 기술을 습득시키고 동맹국들로부터 자금을 끌어 모아 남부 해안도시 디모나 인근에 네게브 핵 연구소를 건설해 핵 무기 제조의 기반을 놓았다. 그의 뛰어난 협상력은 일찌감치 빛을 발했다. 국방 총국장으로 있던 50년대 페레스는 유럽을 누비며 독일과의 무기 거래를 성사시키고 프랑스의 군사 지원을 받아냈다. 외무장관을 역임하던 93년엔 팔레스타인 지도부와의 비밀 협상 끝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인정하는 오슬로 협정을 이끌어내면서 45년에 걸친 분쟁을 줄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일로 이듬해 페레스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는 말년에도 젊은 창업가들을 기업과 연결해주거나 조언을 제공하는 등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면서 이스라엘의 과학기술 발전에 힘을 쏟았다. 지난 7월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이스라엘이노베이션센터 주춧돌 행사에 참석해 연설도 했다. 이 자리에서 페레스는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몽상가라고 부르지만, 오늘날의 이스라엘에서는 꿈꾸던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 실현됐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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