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폭포, 무지개 뜬 방…뜻밖의 공간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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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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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작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 앞에 선 ‘빛의 마술사’ 올라퍼 엘리아슨. [삼성미술관 리움 김현수]

전시실로 들어서자 천장에 매달린 환풍기 한 대가 큰 폭으로 흔들리며 관람객 눈길을 붙들어 맨다. 급하게 또는 느리게 이리저리 공간을 가로지르는 물체에 시선이 반응한다. 냄새를 따라 걸어가니 대형 벽 전체에 폭신폭신 양탄자 한 장이 붙어있다. ‘이끼 벽’이다. 물소리에 끌려 찾아간 곳에는 위로 치솟는 물줄기가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뒤집힌 폭포’라는 반전의 작품명이 붙었다. 허를 찌르는 상식의 파괴가 보는 이에게 새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리움 미술관 ‘올라퍼 엘리아슨’전
허 찌르는 상식파괴로 오감 자극
“느끼는 대로 보는 게 바로 예술”

28일 서울 이태원로 삼성미술관 리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한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은 제목 그대로 ‘그대가 느끼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파한다. 바로 지금 당신의 소소한 감정에 충실 하라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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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폭포’ (1998). [삼성미술관 리움 김현수]

올라퍼 엘리아슨(49)은 “내 작품과 관람객의 관계는 계속 변화하는 것이고, 나도 관객의 한사람이니 가치를 재평가하는 이 전시 공간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제안하는 멋진 신세계”라고 인사했다.

엘리아슨은 자연은 물론, 인간이 창조해온 모든 지적 축적물을 활용한 뜻밖의 작품으로 관람객의 오감(五感)을 자극해 매 순간 바뀌는 ‘느낌의 미학’을 전파해온 작가다. 어린 시절 엘리아슨의 부모는 도화지에 선을 긋고 있는 그에게 “지구를 밀어내, 밀어내라고” 응원했다 한다. 그때부터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생각에 집중했다. 얼핏 보면 건축물의 표면 같지만 만화경 같은 다면체 분광으로 타인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자아가 사라지는 벽’이 이런 그의 신념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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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강한 나선’·‘부드러운 나선’(2016)과 ‘이끼 벽’(1994). [삼성미술관 리움 김현수]

유리구슬이 반짝이는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 앞에서 엘리아슨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지 말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라고 주문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과거, 조상들이 들려주는 얘기를 함축한 별은 또한 보는 이 하나하나를 비춰주고 있다. 그는 중력의 순리를 거스른 ‘뒤집힌 폭포’를 가리키며 “이런 역발상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저는 요즘 자연과 문화 간의 균형, 과학과 예술의 결합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작은 태양(Little Sun)’이 한 결과물인데요. 태양열을 저장한 소형 전구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나눠줍니다. ‘내 손 안에서 쓰는 작은 발전소’인 셈인데 감정과 실용을 융합한 지속가능 에너지죠.”

그는 물안개에 비친 빛으로 무지개 방을 창조한 ‘무지개 집합’ 속에 서서 부탁했다. “여러분은 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 바로 작가입니다. 인류의 미래는 그렇게 느끼는 힘, 바로 문화에 달려있습니다. 문화가 중요하다는 걸 널리 알려주세요.”

엘리아슨이 강조하는 문화의 힘을 느끼기 위한 다양한 부대 행사가 마련됐다. 그의 작품세계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강연회는 11월 26일 오후 2시 이지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내년 1월 14일 캐롤라인 존스 매사추세츠공과대 건축학과 교수가 진행한다. 블랙박스에 설치된 ‘무지개 집합’의 독특한 공간 안에서는 신체 움직임의 탐구가 이어진다. 10월 8일 국립발레단, 26일 고지혜 & 케이 파트루, 11월 12일 김설진, 내년 1월 7일 안은미, 2월 9일 정영두씨가 출연한다. 내년 2월 26일까지, 02-2014-6901.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슬란드 계 덴마크 작가. 예술의 사회적 실천과 새로운 개념 제안으로 현대미술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가’로 선정돼 ‘크리스탈 어워드’를 받았다. 베를린 예술대 교수로 일하며 전문테크니션·건축가·프로그래머·요리사 등 90여 명이 모인 ‘스튜디오 올라퍼 엘리아슨’을 설립해 세계 여러 도시에서 전시에 참여한다. 2003년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홀에 설치한 ‘날씨 프로젝트’, 2015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 전시한 ‘현실 기계’ 등이 화제를 모았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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