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매일 쓰는 치약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라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됐던 유해물질인 메틸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치아졸리논(MIT)이 시중에 유통 중인 치약에 함유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CMIT와 MIT는 알레르기성 피부염과 기침, 호흡 곤란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치약에 이들 성분을 보존제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의 11개 치약 제품에서 CMIT·MIT가 0.0022~0.0044ppm 검출돼 제품 전량이 회수당하게 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사건의 전말을 솔직하고 소상하게 밝히고 신속하고 확실한 회수가 이뤄지도록 나서야 한다. 소비자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제품 안전 시스템 강화도 당연히 이어져야 한다.

치약은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용품인 데다 특히 입안에 들어가는 제품이다. 그런 만큼 함유 성분의 유해성과 안전성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도 의약부외품인 치약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그동안 이를 깜깜이로 몰랐다는 사실은 태만이 아니면 무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가습기 살균제가 사회적 문제가 됐을 때 식약처가 해당 물질의 생산·유통·사용 실태를 철저히 파악해 함유된 생활용품은 회수케 하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를 단단히 했으면 마무리됐을 일이다. 치약에서 CMIT·MIT가 검출된 것은 비극적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겪고도 유독물질 관리 수준과 국민 안전이 개선된 게 없음을 뜻한다.

더 큰 문제는 약 3000t의 CMIT·MIT 함유 보존제가 몇 년에 걸쳐 생활용품 제조업체를 비롯한 시중에 유통됐다는 점이다. 아모레퍼시픽 외 다른 업체의 치약이나 구강세정제를 비롯한 생활용품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식약처는 지금이라도 이들 유해물질의 행방을 전수 추적하고 다른 업체의 치약이나 구강청결제 등에 사용됐는지를 확인해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이들 성분이 치약으로 사용됐을 때는 인체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