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올 봄에 샀는데 2017년형…자동차 연식은 ‘고무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회사원 윤종연(37)씨는 지난달, 타던 차를 팔려다 구매자와 언쟁을 벌였다. 자신의 차가 2010년에 생산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차대번호 조회 결과 2009년에 생산된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차대번호는 제작 국가와 제작사, 제작연도 등을 적어 차체에 부착해 놓은 식별번호다. 구매자는 생산연도가 더 오래됐기 때문에 가격을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분명히 2010년식 차량을 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동차 등록증과 차대번호에는 2009년에 생산한 차로 적혀 있어 의아했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이영종의 바로 보는 북한] 핵실험 해놓고…“해방 후 첫 대재앙” 수해지원 요청한 북한



완성차 업체들이 연식모델(MY·Model Year) 출시 시점을 앞당기면서 소비자들 사이에 크고 작은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차량의 연식과 실제 생산연도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새 기능이나 편의 장비가 추가된 연식변경모델을 기다리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완성차 업체에서도 작은 변화로 ‘신차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이유로 연식 변경모델의 출시 일정은 계속 앞당겨지고 있다.

기사 이미지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연말 다가오면 다음 해 모델 내다가
신차 효과 노려 출시 앞당기기 경쟁
2년 기한 내서 연식 표기해도 합법
생산 연도와 다르면 중고매매 혼란

특히 보통 하반기에 나오곤 했던 완성차 업체들의 연식 변경 모델 출시가 올해 들어서는 아예 상반기로 앞당겨졌다. 6월 말까지 개별소비세 인하조치가 연장됐고, 신차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경쟁도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중형세단 쏘나타의 경우 이례적으로 지난 4월 2017년형 모델을 내놨다. ‘케어플러스’나 ‘스포츠패키지’ 등 젊은 층이 좋아하는 안전·디자인 사양과 옵션이 추가됐지만 2016년형 모델과 큰 차이는 없다. 차급(트림) 별로 가격은 소폭 올랐다. 업계에선 지난 3월 르노삼성의 SM6, 4월 한국GM의 신형 말리부가 출시되는 등 경쟁자들이 늘었고, 개소세 인하 기간 내에 구매를 늘리려는 전략으로 해석했다. 기아자동차 중형세단 K5도 지난 6월 2017년형 모델을 출시했다 차급을 변경하고 변속기를 교체하는 등 상품성을 높였다곤 하지만, 상반기 내에 연식변경모델이 나온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연식변경모델 출시를 앞당겼다. 한국GM은 경차 스파크의 연식변경모델을 지난 6월에 내놨고, 지난 4월에 출시한 말리부는 5개월 만인 이달 2017년형 모델 계약을 시작했다. 쌍용차도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볼리·티볼리에어의 연식변경 모델을 이달 선보였다.

자동차의 연식은 법에 규정된 한도 내에서 완성차가 임의로 붙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식 쏘나타’ 같은 식으로 사양이나 디자인을 조금씩 바꿔 판매하는 식이다. 과거에는 자동차 관리법에 해당 규정이 있었다. 연식과 실제 생산연도를 같게 표기하도록 했다가 2000년 법을 개정하면서 해가 바뀌기 한 달 전부터 다음해 연식을 표기할 수 있도록 했다. 2003년에는 7월 이후 출시되는 모델에 한해 다음해 연식을 표기할 수 있도록 규정이 다시 바뀌었다.

그러던 것이 2005년 국토교통부 고시인 ‘자동차 차대번호 등의 운영에 관한 규정’으로 세분화됐다. 이때부터 ‘모델 연도(연식)는 실제 생산연도와 관계없이 24개월 이내의 생산기간 내에 각각의 자동차 모델을 구별해 지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연도를 말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쉽게 풀어 말하면 완성차 업체가 2년 기한 내에서 임의대로 연식을 표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차대번호에는 연식 외에 실제 생산연도도 표기돼 있다. 하지만 차량 구매자들이 통상 ‘201X년식’이라는 광고문구를 보고 차량을 구입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지나면 헷갈릴 수 있는 것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연식모델 조기 출시에 대해 소비자들이 많이 알고 있고, 오히려 사양이 추가된 연식변경 모델을 기다리는 고객들이 많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고차를 거래할 때 분란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완성차 업체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 2년 가까이 실제 생산연도와 연식이 달라지는 건 기업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신차 효과를 얻기 위해 ‘언 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연식모델 출시를 앞당길 게 아니라 상품성으로 승부를 겨루는 것이 기업 신뢰를 높이고 불필요한 시장의 혼란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