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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지진 온다던 24일밤, 진앙마을회관에서 주민과 라면 먹고 1박한 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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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후 김관용 경북도지사(왼쪽)가 경주시 내남면 부지1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저녁 식사로 라면을 먹고 있다. 라면은 마을 주민들과 도청 직원들이 같이 끊였다. [사진 경북도]

 
지난 20일 오후 4시 경북 경주시 황남동 한옥지구. 지진 피해를 입은 한옥들 사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타났다.

박 대통령은 김관용 경북지사 등과 함께 부서진 기왓장 등 피해상황을 살폈다. 주민들은 박 대통령에게 "불안하고 무섭다"며 고충을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약 30분 뒤 월성원전으로 떠났다. 대통령이 다녀가고 이틀 뒤인 22일 경주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이틀이 지난 24일 김관용 도지사가 다시 경주를 방문했다.지난 12일 지진이 발생한 이후 여섯번째 경주 현장 방문이었다. 이날 오후 3시30분쯤 경주에 도착한 김 지사는 불국사·첨성대 등 문화재 피해 현장을 돌아봤다.

현장 점검이 마쳤는데도 김 지사는 경북도청이 이전한 안동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푸른색 점퍼에 면바지를 입은 차림의 김 지사는 이날 오후 5시30분쯤 규모 5.8 지진의 진앙인 경주시 내남면에 나타났다. 청와대 출입 방송사들의 화려한 카메라 조명도 없는 진앙 마을을 김 지사가 조용히 찾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은 일부 SNS를 중심으로 퍼진 괴담에 따르면 '큰 지진이 일어날 날'로 지목돼 경주·울산 등지의 주민들이 불안감이 고조된 날이었다.

주민들의 불안감 호소가 잇따르자 김 지사가 진앙인 경주 내남면에서 주민들 곁에서 하룻밤 숙식을 하겠다고 자청해 현장을 찾은 것이었다. 내남면은 부지리와 덕천리, 비지리 등 지난 12일 규모 5.8 지진과 400차례 이상 이어진 여진의 진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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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리 마을 입구에서 김 지사를 발견한 박원자 할머니(81)는 다짜고짜 김 지사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피해가 너무 커. 불안하고 무서워 죽것소." 박 할머니는 아들 최상덕(52)씨와 집 앞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집에 균열이 생기는 등 지진 피해가 심각해서다. 김 지사는 "내남면 일대는 경주에서도 특히 피해가 많은 곳인 만큼 '특별재난 지역 중에서도 특수지역'으로 보고 있다.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박 할머니를 위로했다.

김 지사는 이어 칫솔을 바지 주머니에 챙겨 넣고 부지1리 마을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을회관을 임시 숙소로 택했다. 30여명의 마을 주민이 도지사가 왔다는 소식에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김 지사는 "24일 오후 8시30분에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괴담이 퍼져 주민 여러분께서 불안해하고 있다고 들었다. 제가 여기서 잠을 자면서 한번 지켜보겠다"고 했다.

김 지사는 지진 피해 현황, 마을 주민들의 고충을 하나씩 청취했다. 이어 주민들과 라면과 김밥을 저녁 삼아 함께 들면서 저녁으로 대신했다. 김 지사와 주민들이 라면 그릇을 거의 다 비운 오후 7시55분쯤. 갑자기 마을회관에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규모 2.5의 여진이 발생했다. 주민들이 "지진 괴담이 사실 아니냐. 또 온다. 또 지진이…"라고 갑자기 불안해했다. 김 지사는 "걱정할 게 없다. 단순 여진이고 이젠 끝났다"며 불안해하던 주민들을 급히 다독였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추가로 여진이 발생하지 않자 주민들은 하나둘씩 안정감을 되찾았다. 한 어르신은 "이젠 지진도 지쳐 또 오겠느냐. 400번이나 왔는데"라며 가벼운 농담까지 할 정도로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김 지사를 수행한 경북도 공무원이 "도지사께서 오날밤 여기에 머물 것입니다. 더 큰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시고 댁으로 가셔서 주무세요"라고 권했다. 이날 오후 10시가 넘어 주민들을 모두 귀가시키고 김 지사는 직접 마을회관에 이불을 폈다. 김 지사는 자신을 수행한 정병윤 경제부지사, 이묵 대변인 등 경북도 공무원 5명과 함께 추가 대책을 논의했다.

25일 오전 6시 김 지사는 새벽부터 진앙 마을 이곳저곳을 돌았다. 김 지사는 "심리적 안정을 찾을 때까지 심리치료 등 적극 지원하겠다"며 주민들에게 재차 약속했다. 최두찬(57) 부지1리 이장은 "도지사가 직접 진앙마을에 찾아와 13시간 정도 머물렀다. 여진을 주민들과 함께 느끼고 돌아갔다. 마을 주민들의 불안감이 다소 진정된 듯하다. 이젠 피해복구에 최선을 다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주 지진으로 불안감이 남은 가운데 지난 7월 발생한 악취와 가스 냄새 신고가 부산과 울산 지역에서 또다시 접수됐다.

지난 24일 오후 3시15분쯤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본부 청원경찰이 “가스 냄새가 난다”고 본부에 신고했다. 고리원전본부와 경찰·소방·해경 관계자들은 곧바로 원전 발전소 내부와 주변 지역을 조사했으나 특이한 냄새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날 부산소방본부에는 총 8건의 가스 냄새 신고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오전 11시4분부터 오후 3시17분 사이 기장군과 인근 금정구에서 4건이 접수됐다. 이에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울산 석유화학공단에서 발생한 악취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같은 날 오전 9시쯤 울산시에 “심한 악취가 난다”는 주민 신고가 70여 건 접수됐다. 신고 지역은 주로 남구 황성동과 용연동 쪽으로 석유화학공단 주변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석유화학공단에 있는 일부 업체에서 보수공사를 하면서 악취가 난 것으로 추정한다. 이 과정에서 배관에 남은 연료를 태우기 때문에 악취 민원이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경주·울산=김윤호·강승우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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