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앞세운 개방압력 안 끝났다|미 하원 더몬드 법안 폐기의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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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장두성 특파원】한국 등 아시아 3개국이 가장 우려했던 더몬드 법안에 대한 하원 번복 표결이 6일 8표 차이로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의회의 보호무역주의 압력은 일단 수그러들 전망이다.
한국의 섬유·신발 업계도 한미섬유협정이 가하는 압박은 받겠지만 30%수출감소를 위협해 온 이 법안의 타격은 면한 셈이다.
앞으로 남은 또 다른 산맥은 역시 민주당이 주도해서 마련한 일괄 통상법안인데 민주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 법안을 통해 또다시 보호주의 선풍을 일으키려 할 것은 확실하지만 표결로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워싱턴의 일반적 관측이다.
의회는 8월15일부터 9월8일까지 여름 휴회로 들어가며 9월9일부터 10월5일까지 개회한 후 다시 선거유세를 위한 휴회로 들어간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회기는 한달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이기간 중에는 의회 최대 작업인 세법개혁안을 마무리 지어야 되기 때문에 일괄 통상법안을 다루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섬유산업 등 관계지역출신의 민주당의원들도 미국산업보호를 위해 할만큼은 했다는 구실을 갖고 선거주민들을 대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은 셈이다.
이 법안은 사실 경제논리 적 측면에서는 명분이 없는 것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유력 지들은 이 법안이 엄청난 무리를 범하고 있다고 사설을 통해 지적해 왔다.
그런 견해의 근거로는 미국섬유업계가 이미 많은 보호를 받고 있으며 더 이상의 보호조치를 받아 그런 법안이 실시되어도 회 생하기 어려운 사양산업이라는 구조적 문제에서부터 이 법안이 실시되면 미국농산물에 대한 보복을 받아, 더 큰 손실을 보게 된다는 실리 논이 지적되었다.
미국 소비자단체는 표결전날 워싱턴포스트지에 전면광고를 내고 연봉 1만3천 달러 짜리 섬유 종사자의 일자리 하나를 구해 주는 대가로 매인 당 7만 달러의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대통령경제자문회의의 집계를 인용했다.
이 법안은 또 한국·대만·홍콩만 들어내서 규제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인종차별법안」이라는 비판도 받아 왔다.
원래「젱킨즈」하원의원이 제안했던 이 법안은 중공·브라질 등 12개 나라를 대상으로 삼았었다. 그러나 중공·브라질 등 이 정치적 비중 때문에 지지표를 분산시키는 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한 주창자들은 9개 나라를 제외하고 만만한 아시아 3개국만을 담은 더몬드 수정안을 채택했던 것이다.
이 법안의 번복 실패로 의회 목 보호무역주의 물결이 일단 후퇴하리라는 판단은 이 법안이 여러 갈래의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모두 묶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날 표결로 그와 같은 일반적 추세에 대한 결론일수 있다는 추측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상원에서 이 법안이 심의되는 과정에서 이법 지지자들은 다른 분야의 보호주의 움직임을 규합하기 위해 ①동 수입을 규제하기 위한 도메니시 수정안 ②대미 섬유수출국의 저임금이 미국 섬유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보커스 수정안 ③신발류 수입을 미국 총수요의 60% (현재는 76%)로 제한하려는 더몬드 수정안 등을 동승시켰다.
이와 같은 동조자 규합을 통해 제안자들은 동생산지 출신의원 10명과 신발산업 지역출신의원 15명중 반수는 끌어들일 수 있다고 추산했었다.
의회 쪽의 보호무역주의가 일단 좌절되었지만 이번 표결이 재석 3분의2를 요하는 번복 표결이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될 것 같다. 보호주의의 물결은 아직도 막강한 저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회 쪽 압력을 무마하기 위해 시장개방과 기타 규제 조치를 강화해야 된다는 명분을 내세워 통상 상대국에 압력을 넣어 온 행정부 측 통상정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봐야 한다.「말리는 시어머니」격으로 행정부의 그와 같은 압력은 의회입법조치에 크게 미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계속 불어나고 있는 한 미국시장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한국 등 통상 상대국은 부단한 압력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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