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엉거주춤…여권 권력배분|주목 끄는 민정 정 사무총장의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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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일 민정당의 집권 종반기운영문제에 관해 언급한 정순덕 사무총장의 발언은 몇 가지 대목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정 총장은 『당과 후보자가 주축이 되어 내년 선거를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내년 선거에서 당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후보자가 결정됐다고 해서 당헌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현 당헌체제를 고수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일견 서로 상반되는 것 같은 발언이지만 집권종반기를 운영하는 여권 구도의 일단을 밝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집권종반기의 운영문제는 후계자문제와 그에 따른 권력배분 등 이 포함되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권 내에서도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하기를 꺼렸었다.
한 폭으로는 여권 내에서 걱정하는 이른바 통치권의 누수현상이란 것을 피해야 하고 다른 쪽으로는 새로운 후계체제가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모순되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1년 반 가까이 남은 시기에 이 모순되는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적절히 해결하느냐가 여권으로서는 엄청난 난제이고 또 이것이 정국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미묘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 총장의 발언은 그 어느 문제도 명백하게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 모순되는 점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여권내의 고민을 표출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당의 후계자는 언제·어떤 방식으로 선출할 것이며, 그 후계자는 총재가 여전히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여권구조 안에서 얼마만큼의 권한을 행사할 것인가가 관심의 표적이 아닐 수 없다. 민정당이 만약 내각책임제개헌을 추진하고 그에 따른 총 선이 내년 하반기에 치러진다면 민정당에 주어진 시간이 그리 넉넉하다고 할수 없다. 집권 종반기에도 대비해야 하고, 선거도 치르는 두 가지 일 정이 사실 바쁘게 펼쳐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민정 당으로서도 이에 대비한 당 체제를 빠른 시일 안에 정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정당의 준비가 현재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정 총장의 발언은 여권내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으며 당내에서 갖고 있는 「문제」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는 것이다.
지난 5월이래「민정당의 정국주도」가 소리높이 내외에 천명되었다.
「모든 권한과 책임」이 당에 위임이 되었고 노태우 대표위원이「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으로 강조되었다.
이러한 당 주도에 따른 여러 가지 눈에 보이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노 대표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이 시작됐고 당에 정부 각 부처 장관의 발길이 잦아지고 번질 난 당정협의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와서 다시 이러한 움직임들에 대한 의구심들이 커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권한과 책임의 배분에 있어서 여권 내에 아직도 커다란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이 정말 정국을 주도하자면 행정부의 업무에 상당히 깊숙이 간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당이 권한을 행사하자면 인사 등 실제적인 문제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칫 당이 행정부 일을 용훼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그와 같은 미묘한 부분에 있어서는 당이 「주도력」을 행사하는 여지가 그리 넓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오히려 몇몇 정책문제에 있어서는 당이 밀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당의 권한과 책임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최근의 당정 개편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의 진짜 개편구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당으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개편을 단행하고 싶은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의원들의 요구도 그렇고, 새로운 체제의 부각필요성을 위해서도 그렇고, 앞으로 임박하고 있는 야당과의 협상을 위해서도 당의 진정한 실세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그러나 민정당의 대폭개편에는 으레 당 출신 각료의 거취, 또는 당 출신의 입각문제 등도 포함되게 마련인데 이러한 부분에 관해서는 당이 개입하기가 지극히 어렵게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당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또 당의 후계자에 관한 문제도 민정당 측은 언급하기를 꺼리지만 전당대회 같은 특정시기에 갑자기 부각시키기보다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는 방법』을 택하기로 하고 있다.
한쪽으로는 현재의 여권통치구조를 흔들리지 않게 하고 또 다른 폭으로는 국민에 대한 이미지를 서서히 구축해 가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고 내지 책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민정당이 『당총재를 편안하게 하고』『당총재를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도록 하는』문제와『차기 후보자를 조속히 부각』시키고『당의 주도아래 선거를 치르는』문제를 서로 조정시키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통치권의 누수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후계자의 부각시기·선거시기 등 이 늦어져야 한다는 주장과 선거 등에 빨리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 사이에서 선뜻 결정을 못하는 미묘한 상황이다.
민정당이 내년도에 어떻게든 치를 것으로 예상되는 총 선에 대비하자면 체제정비·공천 등은 물론 권력승계의 절차 등을 원활히 수행해 나가야 한다는 복잡한 난제들을 안고 있다. 이를 처리해 나가자면 당헌 당규 등을 고쳐 내부정비를 해야 하고 전당대회 등 당의 굵직한 정치일정에 대한 나름대로의 구도가 확립돼야 한다.
그럼에도 민정당이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장기적인 정치구도의 수립에 필요한 여권 내 권력배분 등 여건들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정 총장이 민정당에 대한「권한이양의 확대」를 언급한 것은 이와 같은 의미가 아닌가 싶다.
어떻든 민정당으로서는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당으로서의 결론을 조만간 내려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 같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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