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도 부정선거 많다|민주당 선거운동원 8명기소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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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워싱턴=장두성 특파원】미인디애나주 연방 대배심은 최근 8명의 민주당 선거운동원들을 부정선거 혐의로 기소했다. 기소 이유는 이들이 82년 중간선거와 84년 총선에서 유권자 1인당 15달러내지 35달러씩 주고 표를 샀다는 혐의다.
이에 따라 이들에 대한 재판이 곧 열리게 되고 이런 형태의 부정선거는 제3세계에서만 있을 수 있다고 자부해온 미국 언론에 의해 널리 보도되고 있다. 필리핀·니카라과 등지에서 부정선거를 「감시」하는 도도한 역할을 맡아온 워싱턴의 정객들은 이 보도에 대해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 표를 돈 주고 사는 행위는 흔한 일이 아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지역은 인디애나주와 켄터키주의 경계에 위치한 크로포드군이라는 벽촌이다.
옥수수와 콩과 담배를 주로 재배하는 이 지역 주민의 15%는 극빈자로 분류될 정도로 이곳은 빈촌이다. 그와 같은 경제적 어려움에다가 지역적으로 대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예부터 행해져온 매표행위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이곳 군서기 한사람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같이 매표행위를 하며 시가는 30내지 40달러』라고 말했다. 지방자치제가 확립된 미국에서는 국회의원 선거때 지방법원 판사·보안관및 각급 지방관리를 한꺼번에 투표하기 때문에 선거운동원들은 자기당 후보전원에 대해 투표한다는 조건으로 이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 지역의 매표행위는 지난 1백년동안 계속되어온 하나의 관습인데, 지난 총선에서 이 지역출신 국회의원이 4표차로 당선이 확정되자 연방수사국(FBI)요원이 조사에 착수, 그 내막이 폭로되게된 것이다.
FBI의 조사로 형사입건 됨으로써 매표행위에 관련된 8명은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5년 징역에 1만달러의 벌금을 물게 되었고 이 지역의 매표관습도 더 이상 계속되기 어렵게 되었다.
선거가 있는 다른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매표행위는 늘 있어 왔다. 워싱턴 포스트지 사설은 「프랭클린·루스벨트」대통령시대 (2차대전전)에만 해도 돈을 주고 표를 사는 행위는 「다반사」였다고 한다. 「존·케네디」대통령의 지지자들도 60년 선거때 일리노이주에서 부정선거를 범했으나 「닉슨」후보가 문제를 삼지 않았기 때문에 당선되었다. 그때 표값은 5달러였다고 한다.
볼티모시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보들이 운동원들에게 「보행용전」이라는 걸 주는 관행이 있었는데 그 용도는 주로 유권자 매수였다고 한다.
또 과거에는 전국적으로 지구당 요원들이 크리스머스 때면 지지 유권자들 집에 칠면조를 선사하고 추운 겨울(난로를 쓰던 시절)에는 석탄 한바께쓰씩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골적인 매표행위는 선거법이 더욱 엄격해지고 민도가 높아짐에 따라 대부분 사라졌고 이번 사건이 보여주듯 시골 의회선거수준에서는 희귀한 뉴스거리로 취급될 정도다.
최근의 예로는 76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리처드·토리」가 부정선거혐의로 기소된후 의원직을 사퇴했고, 79년에는 「클로드·리치」하원의원의 선거운동원 24명이 매표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지방선거에서는 매표행위 등 부정선거 사례가 더 흔하다. 특히 루이지애나주에서는 『늪지대의 악어떼만큼이나 매표행위·표도둑질이 흔하다』고 뉴스위크지는 보도한바 있다.
매표의 수법도 가지가지다. 가장 흔한 방법은 부재자투표인데, 연고자가 부재자투표용지를 받아와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원에게 돈을 받고 파는 행위다.
그 다음으로 흔한 방법은 투표에 관심이 없는 흑인들을 트럭을 동원해 투표소부근에 모은후 돈을 주고 특정후보에 기표하도록 지시하는 행위다.
이밖에도 최근에 이사간 유권자나 최근에 사망한 사람및 병석에 있어서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의 명단을 파악해 대리투표하는 행위다. 지방정부는 특정정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당후보를 위한 부정행위라면 눈감아주게 된다.
이와 같은 부정행위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남부의 농촌지대에서 특히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백여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미국에서도 선거 때는 술판이 요란하게 벌어졌었다는 기록이 있다. 미국 초대대통령인 「조지·워싱턴」은 1757년 워싱턴에서 지방의회 의원에 출마했었는데, 이때 「워싱턴」이 유권자들에게 베푼 술은 렴주 28갤런, 럼펀치 50갤런, 포도주 34갤런, 맥주 46갤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때 유권자수가 3백91명 밖에 되지 않았으니 유권자1인당 반갤런씩 술을 먹인 꼴이다.
1907년 제정된 선거법은 선거운동원이 유권자에게 『선물·기부금·돈꿔주는 행위, 또는 값있는 물건 제공』을 금하고 있다. 이 법으로 매표행위나 술대접 등은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선거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유권자들을 매수하는 행위보다는 대기업 또는 정치행동위원회(PAC)라는 이름의 특정이익단체에 의한 후보매수활동이다.
이들은 엄청난 선거자금을 후보들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의원들의 원내표결방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의원들은 명목상으로는 선거구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이익단체의 주구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
희귀해진 부정선거의 예 보다는 그런 현상이 민주주의의 바탕을 갉아먹는다는 것이 미국 선거규제론자들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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