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류태형의 음악이 있는 아침]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한 ‘볼레로’

중앙일보

입력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라벨 ‘볼레로’ 얘깁니다. 여리게 시작해서 점점 커지는 크레셴도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볼레로는 스페인과 그 식민지였던 쿠바의 춤곡입니다.

라벨 ‘볼레로’는 원래 발레음악으로 구상했던 작품이라 하죠.

당대의 전위 무용수 이다 루빈스타인이 알베니스 ‘이베리아’에서 6곡을 골라 라벨에게 편곡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저작권 문제 등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 작품에 손을 댈 수 없게 됐습니다.

이에 라벨은 아예 새로운 작품을 창작합니다. 원래 제목은 ‘판당고(Fandango)‘ 였지만 최종적으로 볼레로로 바뀌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라벨은 볼레로 리듬 위에서 특징 있는 단 두 개의 주제만을 반복합니다.

18번이나! 전혀 형상을 바꾸지 않고 말이죠.

각 악기들이 솔로로 두드러지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쉽지 않은 곡입니다.

고음역을 실수 없이 불어야 하기에 관악기 주자들에게는 긴장감 넘치고 어렵게 다가옵니다. 긴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스네어드럼을 치는 타악기 주자도 주목됩니다. 곡이 시작하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끝까지 거의 똑같은 리듬을 연주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시계 초침이 되어야 하죠.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생각해 보니 영화 ‘밀정’의 파티 장면에 더 없이 잘 어울리는 곡이네요. 스포일러라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의 연주로 들어보시죠.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ㆍ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