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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따로, 경제 따로’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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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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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거의 모든 경제 현상은 실험실에서 테스트하기 어렵다. 그래서 흔히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즉 ‘여건이 일정하다’는 가정하에 경제 현상을 분석·예측한다. 국가안보 상황이나 지정학적 리스크가 변함없다는 전제로 경제를 전망하는 것은 한 가지 예다.

실제 얼마 전 어느 유명 국제신용평가사가 우리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것은 당시 한반도 안보 상황을 ‘안정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관련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된다면 다시 신용등급을 낮출 것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이후에 있었던 제5차 핵실험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 북한의 새로운 도발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관련 국론 분열 등 우리의 대응이 이 단서를 충족하는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것은 ‘안보 따로, 민생(경제) 따로’라는 말에 어폐(語弊)가 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메시지로, 국가안보와 이를 지탱해 주고 있는 한·미 동맹 관계를 경제와 민생과는 별개의 국정 어젠다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은 중·소 규모 개방경제로, 대외의존도가 남달리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무역과 금융 의존도를 갖고 있다. 특히 증권시장의 대외 개방도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다(상장주식의 1/3을 외국인투자자가 소유). 그 결과 우리 경제의 안보 상황 변화에 대한 민감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 연준(Fed)의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은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한층 더 강화할 것으로 보여 국제금융 충격에 취약한 대부분의 신흥경제국들은 급격한 자금 유출입에 따른 금융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때일수록 정부의 민첩한 경제 위기 관리 및 정책 조정 기능 강화와 함께 국가안보에 관한 국론 통일과 여야 간 협치로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국제사회가 실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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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그러면 핵무기 개발은 물론 수소폭탄 제조 단계에까지 근접해 있다고 주장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안보를 당장 무엇으로 지켜낼 것인가. 북한이 공공연히 폐기해 버린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매달려 시간만 낭비할 수는 없다. 북한의 핵 포기를 목표로 한 유엔과 개별 국가 차원의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의 강화는 계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중국의 기본적인 대(對)한반도 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그 궁극적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중국은 적어도 앞으로 상당 기간 분단된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위해 심지어 핵을 가진 북한 공산체제마저 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식량과 에너지 공급선을 끊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에 중국이 공식적으로는 참여하더라도, 국제 제재가 북한의 핵 포기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명실상부한 G2 국가로서 대승적 차원의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기대하기에는 아직은 이르다고 봐야 한다. 얼마 전에 열렸던 항저우 G20 정상회의는 중국이 의장국으로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세계경제가 ‘장기침체’를 우려할 정도의 저성장세를 보이는 한편,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추세 속에서 개최됐던 항저우 G20 정상회의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강력한 G20 차원의 정책 공조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계기였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별 성과 없이 끝난 것은 중국의 글로벌 리더십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의 지역 패권(覇權)주의 차원의 자신에 찬 모습과는 퍽 대조적이다.

그럼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화된 상황하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 스스로의 핵 개발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국제 정치·외교·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이 시점에서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면 그 대안으로 사드 배치와 함께 미국의 전술 핵무기 재배치와 소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식 핵 공유체제’ 도입 등을 위해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는 국가안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늘어날 조세 부담을 감내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다소간 차이는 있겠지만 한·미 동맹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의 비용은 어떻게든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수소폭탄이 개발되고 있을 때, 제3차 세계대전은 어떤 전쟁이 되겠느냐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물었다. 그는 어떤 무기가 더 개발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그다음 전쟁은 ‘돌로 싸우는 전쟁’이 될 것이라고 섬뜩한 답을 했다고 한다. 국가안보에 관한 국론 통일과 여야 협치가 무엇보다 시급한 때다.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