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전 미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경주시 용강동의 고분에서 출토된 채색 토용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 출토된 점에서 뿐 아니라 정교한 모양과 미소를 띄고 있는 얼굴 표정이 너무나 생생하다.
크기가 겨우 9㎝에서 16㎝에 불과하지만 당당한 위풍과 너그러운 인품을 느끼게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빳빳한 수염까지 드리운 노인의 풍모에도 어김없이 정감이 서려 있다. 물론 토용의 의상과 관모로 당시의 복식연구도 가능해질 것 같다.
토용은 왕이나 왕족의 무덤에 피장자의 시중을 들던 시종이나 문관의 모습을 흙으로 만들어 넣은 것을 말한다.
「흙으로 만든 인형」이란 뜻에선 토우의 일종이지만 무덤에 넣는 부장품, 명기의 하나란 점에서 구별된다.
토우에는 장난감으로 만든 것, 주술적 우상의 성격을 갖는 것도 있다.
그러나 지금 알려진 토우의 주종은 역시 옛 무덤에서 나오는 토용이다.
중국에선 벌써 은대에 토용이 나타난다.
1974년에 발견된 진시황릉에서는 수만 개의 토용이 발굴됐다. 진시황을 호위하는 대형군사와 병마군단의 위용은 볼만했다.
6척 장신의 병사들은 얼굴 모습이 모두 달랐고 표정조차 달랐다. 모두 도제였다.
BC3세기의 토용들은 실물대였다. 그러나 한 대 이후엔 크기가 작아지고 대신 채색이 나타났다.
전한 시대 제남에서 출토된 토용 중에 악무잡기용도 있다. 납작한 흙판 위에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과 재주를 부리는 사람까지 만들어 놓았다.
토용에는 관제에 따른 신분까지 나타내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나라에선 지금까지 신라 토우가 양도 많고 모양도 다채롭다.
고려에는 예가 없는 대신 조선시대엔 도제의 명기들이 있다.
신라 토우 중엔 금영총의 기마인물형 토기와 인물주형토기 각1쌍이 가장 뛰어났다.
물론 토기에 장식된 토우는 수없이 많다. 임신한 여인이 가야금을 뜯는 것, 남녀의 성행위 장면까지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토우들은 작고 앙증스럽지만 익살스런 모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독립적인 모습의 토용은 없었다.
그 흙으로 빚은 사람과 말들은 비록 1천여년을 무덤 속에 묻혀 있었지만 신라인의 해학과 익살을 여전히 보여준다. 조상의 뛰어난 솜씨와 미감도 새삼 자랑스럽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