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신세된 중국집 주방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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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국음식 요리사 경력 30년의 張모(53)씨.

한때 종로통 유명 중국집의 주방 2인자 자리까지 올랐던 '프로'다.

하지만 그는 요즘엔 서울 강북지역 한 공원의 노숙자다. 몇달 전 주인과 말다툼을 하고 그만둔 뒤 도무지 일자리를 못 찾고 있다. "눈높이를 낮춰 동네 조그마한 중국집 문도 두드려봤지요. 한데 중국동포들이 자리를 죄다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무직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는 독신(이혼남)으로 살아온 월세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노숙을 하고 있던 후배에게 이끌려 이 공원을 찾았다.

"중국집 주방장 출신 15명이 노숙 중이었어요. 인건비가 싼 중국동포들에게 밀려난 사람들이었지요."

한가락씩 하는 요리사들이라 이들은 야외용 버너와 간단한 조리기구를 갖다놓고 스스로 식사를 해결한다. "재료비는 순번을 정해 하루씩 막노동을 다녀와 충당한다"고 했다.

"배운 게 요리뿐이라 다른 일은 할 수가 없고…." 張씨는 "우리 같은 신세가 된 동료들이 지하철역이나 공원에 적지 않다"며 답답해 했다.

중국동포 요리사들이 몰려들면서 '토종 주방장'들이 중국집에서 퇴출당하고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동네에서 이름 좀 나면 월 2백50만~3백만원씩에 모셔지는 '귀한 몸'이었다. 하지만 98년께부터 불황이 계속되면서 그 절반만 받고 일하는 중국동포들에게 밀리고 있다.

거기에 기계의 발달도 퇴출에 한몫한다. "예전엔 수타식으로 면발 뽑는 법을 익히는 데만 5년 넘게 걸렸어요. 한데 지금은 몇분 만에 생생한 면을 만들어내는 기계 때문에 실력도 필요없게 됐어요."

그래서 서울 ○○구 중식업협회장 모씨는 "관내 2백여 업소 대부분이 중국동포를 주방보조 이상으로 고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기가 안좋다 보니…"라고 털어놓았다.

서울 광진구에서 중국집을 운영 중인 金모(45.여)씨는 "까다로운 한국인 주방장들 대신 2년 전부터 중국동포 출신만 고용한다"며 "값도 싸고 불법체류 신분이니까 이직률도 적고 이래저래 좋다"고 했다. "동네 중국집들은 대체로 중국동포를 데려다 1년쯤 교육시킨 뒤 주방일을 맡기고 있다"는 것.

싼 임금으로 국내 요리사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중국동포들에겐 다른 문제도 있다. 대부분 불법체류 신분이라 식품위생법 등에 규정된 '보건증'을 받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지 않으며, 만드는 음식의 위생상태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그것이다.

어쨌거나 張씨 등은 오는 8월 정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강제출국 조치를 기다린다. 노숙 동료인 李모(41)씨는 "매일 새벽 북창동 요리사 인력시장에 헛걸음하지 않는 날이 정말 오는 거냐"고 물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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