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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권비영 작가 “덕혜옹주 만나고 역사에 눈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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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김규리

권비영 작가의 소설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를 원작으로 한 영화 '덕혜옹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뜨거운 여름, 극장가엔 매일 새로운 영화가 개봉되며 경쟁이 치열하다. 그 가운데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관객을 모으는 영화가 있다. 손예진·박해일 등이 출연한 영화 ‘덕혜옹주’다. 자유롭지 못했던 덕혜옹주의 일생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슬퍼하며 호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 『덕혜옹주』가 나온 지 벌써 6년이 흘렀다. 작가 권비영은 100만 부가 넘게 팔린 이 소설로 인해 빛을 보았다. 지난 8월 24일, 권 작가를 만났다. 환한 웃음으로 TONG청소년기자단을 맞이한 그는 대한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가 권비영 [사진제공=권비영]

소설가 권비영 [사진제공=권비영]

-영화 ‘덕혜옹주’를 보셨나요.

“영화를 5번 봤어요. 사실 처음 볼 땐 집중하지 못하고 영화 줄거리만 파악했어요. 내 소설과 어느 부분이 똑같은지, 어느 부분이 다른지, 어떤 부분을 조금 더 강조하고 어떤 부분에서 조금 더 힘을 뺐는지. 그런데 두 번, 세 번 보다 보니 그때 내가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울기도 울었고 참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영화 캐스팅에 관여하셨는지 궁금해요.

“캐스팅은 감독의 몫이죠.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어느 영역이나 전문가의 몫이 있다고 생각해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덕혜옹주, 그러니까 영화배우 손예진이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갇혀 가만히 허공을 쳐다보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 예쁘던 마마가 몸과 마음이 모두 상해 자신을 놓아버린 느낌이 내게 다가왔어요.”

- 조선의 수많은 공주, 옹주 중에서 덕혜옹주에 초점을 맞춘 이유가 있을까요.

“‘마지막’이라는 것에 마음이 끌렸어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진 나라에 대한 애석함도 포함돼 있고요.”

- 자료 조사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국내에 덕혜옹주와 관련된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발 빠르게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죠. 대마도도 몇 번이나 갔다 오고, 국내에 덕혜옹주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어디든지 다녀왔어요. 당시 일본 여성이 썼던 덕혜옹주 평전이 있었는데, 그 평전을 참고하면서도 절대 그 색깔이 나와 섞이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대마도에 세워진 덕혜옹주 결혼 봉축기념비. [사진=중앙포토]

대마도에 세워진 덕혜옹주 결혼 봉축기념비. [사진=중앙포토]


- 자료를 조사하며 어디까지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 어떤 부분을 허구로 할지 미리 결정 하시나요.

“위에서 말했듯이 국내에 덕혜옹주에 관한 자료가 얼마 없어서 좋았던 건 제 상상력이 많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에요. 역사적 사실은 변할 수 없어요. 마마가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결혼했는지 등 그런 사실에는 작가적 상상력이 들어갈 수 없죠. 저는 그 틈새를 노려 저만의 생각과 느낌을 집어넣으려고 노력했어요.”

[관계 기사] 덕혜옹주, 독립운동은 허구…정략결혼한 뒤 조현병은 사실(http:www.joongang.co.kr/article/20449252)

- 출판 당시 접속사가 없는 짧은 문체를 사용했는데 왜 그런 문체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요.

“제 문장이 원래 길지 않아요. 문단에서 여자 작가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미사여구를 잘 사용하지 못해요. 짧은 문장은 제가 항상 추구하는 바예요. 문장이 길어지면 제가 원했던 걸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어 항상 노력했어요. 문체 때문에 남자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많았어요. 하지만 덕혜옹주를 구출하기 위한 탈출 장면을 두루뭉술하게 써서 여자인 게 들켜버렸죠.(웃음) 그런 긴박하고 복잡한 장면은 아무리 노력해도 쉽지 않더라고요.”

- 소 다케유키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요.

“다케유키…. 그가 나쁘다, 좋다라고 말할 순 없지만 전 나쁜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역사의 휩쓸림 속에서 덕혜옹주도, 다케유키도 인간 대 인간으로 보면 피해자죠. 자료조사 중 그가 덕혜옹주에게 썼던 시도 여럿 보았고 여러 가지 기록에서 그가 적어도 노력은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제 생각엔 그는 덕혜옹주를 사랑하진 않았지만 동정했고, 안타깝게 여겼던 것 같아요. 책 속에서도 우호적으로 그렸다고 생각해요.”

일본인 남편 소 다케유키와 함께 선 덕혜옹주.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일본인 남편 소 다케유키와 함께 선 덕혜옹주. [사진=국립고궁박물관]


- 만약 작가님이 덕혜옹주였다면 우리나라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을 거 같나요.

“글쎄… 글 쓰는 사람이니까 글로 국민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요?”

- ‘덕혜옹주’로 큰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더 커요. 알리고 싶던 인물이었으니까요.”

- 덕혜옹주가 성공하면서 그다음 작품을 내는 것에 대해 신중해졌을 것 같아요.

“부담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건 잠시였어요. 작가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본명이에요. 덕혜옹주의 성공이 개인적으로 큰 행운이긴 하지만, 다음 작품 쓰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어요. 여전히 내가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쓸 뿐이죠. 한 작가의 작품이 성공이냐 실패냐는 반드시 상업적인 잣대로 평가할 일은 아니에요.”

- 신작 『몽화』를 집필할 때 이전 작품과 달리 중점을 둔 부분은요.

“대한제국 시기에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에서는 ‘덕혜옹주’와 같지만, ‘몽화’는 특별한 신분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웃에서 함께한 여성들의 고난사죠. 그래서 더 슬픈 이야기예요. 원하지 않아도 운명의 광풍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던 위안부와 그 이웃의 이야기입니다.”

- 위안부 수요집회에 참석 해 보신 적 있으신지.

“있어요. 이번 주에도 갈 겁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치러지는 행사를 보고 ‘소녀에게’라는 작품과 ‘민들레를 꿈꾸다’를 쓴 적이 있죠.”

- 이번 한·일 위안부 협상을 보고 든 생각이 있나요.

“그렇게 협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그 협상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 많은 글감 중 왜 하필 역사의 ‘아픔’을 다뤘나요.

“역사는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우리가 과거라고 생각한 역사도 언제든 다시 되풀이될 수 있죠. 그러므로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민족의 아픔을 항상 기억하고 잊지 말자는 생각에서 집필했어요.”

- 원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지.

“아니요. 덕혜옹주의 아픈 이야기를 안 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역사에 대한 따뜻한 애정에서, 혹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어요.”

- 청소년들이 역사란 지루하고 그저 암기하는 과목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 역시 같은 이유로 역사는 재미없는 과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시절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면 절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이라고 생각해요.”

- 작가님에게 독자란 어떤 의미인가요.

“독자는 나의 응원군인 동시에 나를 키우는 선생님이죠.”

글=김효정·김규리(대구 원화여고2) TONG청소년기자
사진=이명오 선생님(대구 원화여고)·권비영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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