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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 한 장에 100만원, 종합컨설팅은 60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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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자녀의 엄마인 A(48·서울 대치동)씨는 이번 추석에 고민이 많다. 자녀의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21일 마감되지만 아직 어떤 전형에 지원해야할지 최종 결정을 못 내렸다. 1학기 때 받은 두 번의 컨설팅 결과가 서로 달라 오히려 혼란만 커졌다. 고민 끝에 A씨는 지난 여름방학 때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명한 컨설팅업체를 소개받았다.

수시 마감 앞두고 '불안심리' 이용해 지나친 비용 지출도
교육부 10월까지 고액 컨설팅업체 특별점검

A씨는 업체로부터 학생부와 모의고사 점수를 분석해 3개 대학을 정하고 자기소개서(자소서)까지 써주는데 500만원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지원 대학을 정하지 않고 자소서만 써주는 데는 100만원을 요구했다. 그는 “가격이 너무 비싸 당시엔 엄두를 못냈다”면서도 “지금처럼 최종 결정을 못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 때 컨설팅을 받았을 걸 하는 후회도 든다”고 말했다.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되면서 마지막까지 지원서 작성을 놓고 수험생과 학부모의 고민이 크다. 특히 대부분의 대학이 접수 종료일인 21일에 마감이 몰려 있어 이번 연휴 동안 최종 조언을 받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그러나 일부 컨설팅업체에선 ‘불안 심리’를 이용해 합법적인 비용을 넘어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는 곳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올초 B씨(50·서울 대치동)씨는 고3 자녀의 진학을 상담하기 위해 컨설팅업체를 알아보다 혀를 내둘렀다. 한 학기 동안 모의고사 성적분석과 지원대학 선정, 자소서 작성 등의 비용으로 600만원을 요구했다. 해당 업체는 ‘6개 대학 따로따로 자소서를 쓰고 20회 정도 컨설팅을 하기 때문에 비싼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B씨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종합 컨설팅은 포기하고 단기로 몇 번 받았다”며 “전형 개수가 워낙 많아 컨설팅 없인 입시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컨설팅 비용의 상한선은 지역별로 금액이 다른데 서울 강남교육지원청 기준 분당 5000원이다. 즉, 대치동 등 강남 일대에선 시간당 30만원이 표준 가격인 셈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보통 6회 지원 전략을 컨설팅 받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에 30만원씩만 쳐도 180만원”이라며 “컨설팅 비용은 워낙 고무줄이라 실제 가격은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발표한 '강남지역 입시컨설팅업체 교습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10개 업체의 평균 컨설팅비는 60~120분에 67만원이었다. 1분당 평균 교습비는 6000원꼴로 강남교육지원청이 기준으로 제시한 5000원보다 많았다.

그러나 학부모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이뤄지는 ‘고액 컨설팅’은 이보다 더욱 비싸다. 서류만 보고 자소서를 써주는데는 100만원, 학생과 면담해 자소서를 써주고 스펙관리 상담까지 해주면 200만원을 요구한다. 자소서 작성에 지원 대학 선정, 소논문 등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것까지 포함하면 1000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이재진 진학사 팀장은 “일부 ‘고액 업체’는 전공별 석·박사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 수험생이 지원하고자 하는 학과에 맞춤 컨설팅을 한다”고 말했다. “영문과에 원서를 넣으면서 번역가가 꿈이라고 쓰도록 하고 실제로 양로원 등에 가서 영문 소설을 직접 번역해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하도록 시킨다”고 설명했다.

‘고액 컨설팅’은 자소서 작성 등 단기적인 것보다는 1~2학년 때부터 장기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김현정 디스쿨 대표는 “고등학교 입학때부터 컨설팅을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스펙을 쌓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재진 팀장은 “해당 전공을 지원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해왔다는 인상을 남겨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본창 정책국장은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라 스펙을 관리하고 학교에 요청해 학생부에 기재된 담임의 평가 내용을 수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불법으로 이뤄지는 ‘고액 컨설팅’은 모집 방식도 비밀리에 이뤄진다. 홈페이지나 옥외에 광고를 하지 않고 입소문을 타고 연결된다. 이재진 팀장은 “보통 선배 학부모들이나 고1 때 다니던 학원 원장 등을 통해 소개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컨설팅업체 대표 C씨는 “전년도에 ‘실력이 안 되는 애가 붙었다’는 소문이 나면 해당 컨설팅업체에 학부모들이 많이 몰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고액 컨설팅’이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C씨는 “큰 업체의 경우 방대한 자료를 갖고 상담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지만 대부분 업체는 ‘썰’인 경우가 많아 오히려 틀린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컨설팅업체 대표인 D씨는 “시간당 100만원씩 받는 고액 컨설턴트는 대부분 학부모와 수험생의 ‘기대심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D씨는 “안정지원을 선호하는 대부분의 담임과 달리 컨설턴트들은 마치 아무도 몰랐던 학생의 재능을 자신이 발견해낸 것처럼 이야기한다”며 “학부모들은 이제야 자녀의 가능성을 알아봐주는 멘토를 만난 것처럼 기대를 하게 되고 지갑을 연다”고 말했다.

‘불안심리’도 학부모들이 지갑을 열게 하는 주된 이유다. 컨설팅업체 E소장은 "수능과 달리 수시는 변수가 워낙 많다 보니 접수가 코앞에 다가와도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안정권보다 조금 높은 대학과 학과를 지망할 때 컨설팅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 A씨는 "전형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전문가 손을 빌리지 않고선 수시 자체를 준비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고액 컨설팅'은 변호사처럼 성공보수를 요구하기도 한다. 컨설팅업체 대표 D씨는 "강남에선 정시의 경우 최종합격하면 500만원정도를 얹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엔 합격, 불합격의 기준이 애매해서 성공보수를 약속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처럼 요지경 실태인 '고액 컨설팅' 업체를 10월까지 특별점검하겠다고 13일 밝혔다. 수시·정시모집 등을 앞두고 진행되는 컨설팅업체의 고액 수강료 징수와 등록외 교습과정 등이 조사 대상이다. 교육부는 이미 교육청에 등록하지 않고 학생을 대상으로 진학상담을 하며 고액의 상담료를 챙기는 무등록 컨설팅 업체 15곳에 대해 집중조사중이다. 송은주 교육부 학원정책팀장은 "교육청과 합동으로 10월말까지 점검하고, 경찰청 등 유관기관의 협조를 받을 것"이라며 "적발된 학원은 교습정지 및 등록말소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윤석만·전민희·정현진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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