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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한진해운 법정관리…정부에 더 큰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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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개별 기업에 국가차원의 물류 문제를 떠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연강흠 연세대 교수)

한진 부실 ‘최은영 경영’ 때의 일
현 대주주 사재 출연 법적 근거 없어

“대주주의 사재 출연을 강제하는 것은 초법적 주장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학계의 물류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한진해운 사태를 둘러싼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주최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에서 열린 ‘물류대란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란 긴급좌담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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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사회를 맡은 배상근 한경연 부원장은 “최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물류대란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 측에 추가적인 부담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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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토론자로 나선 성균관대 최준선(65)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주주에 대한 사재출연 강요는 주식회사의 유한책임 법리를 넘어선 초법적 요구”라고 비판했다. 채권단이 법적 근거도 없는 ‘주주의 무한책임’을 강요하고 있어, 회사법상 주식회사 제도를 흔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또 사재출연 요구는 법정관리의 본질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정관리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채무를 조정하는 것인데, 이미 자기 손을 떠난 회사를 대주주라는 이유로 개인적인 책임을 지라고 강요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회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진그룹의 출연을 요청하는 것은 한진그룹 계열사 임원에게 배임을 강요하는 셈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그간 사법부는 부실 계열사 지원에 유죄를 선고해왔다. 2000년대 초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 계열사를 우회지원했다가 배임으로 기소돼 유죄판결(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은 바 있다. 대한항공 이사회가 한진해운의 미국 롱비치항 터미널 지분을 담보로 잡은 뒤에야 600억원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이 같은 학습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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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연세대 연강흠(60) 경영학과 교수 역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4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은 어느 정도 진 것 아니냐”며 “여기에 더해 대한항공이 대주주라 해서 유한책임의 범위를 넘어서는 출연을 강제하려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의 대주주가 된 것이 조선업과 해운업 전체가 이미 부실화된 이후인 2014년이기에 2년 간 경영이 부실화를 초래한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연 교수는 한진해운이 부실하게 된 것은 최은영 전 회장이 고(故) 조수호 전 회장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2006년 이후부터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은 최 전 회장에게 물어야 한다는 게 연 교수의 주장이다.

연 교수는“국가가 경제적 파급효과 등 거시적인 측면에서 미래전략을 갖고 산업 구조조정이나 산업 재편 등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물류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개별 기업에 국가 차원의 물류 문제를 맡기거나 책임지게 하는 것은 역할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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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평택대 물류학과 교수

이동현(52) 평택대학교 무역물류학과 교수는 “해운업은 해양물류를 넘어서 외교·안보·신해양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확장성이 있는 산업으로 대표적인 국가기간산업”이라며 “이런 산업을 여러 가지 산업 중 하나로 취급해 금융적인 시각에서만 접근해 지원에 인색했던 것이 오늘날 물류대란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부의 정책 실패 사례로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구조조정 일환으로 모든 기업에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라고 요구한 것을 꼽았다.

고가의 선박 건조와 매입 때문에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해운업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국내 해운사들은 보유 중이던 선박을 매각하고, 남의 배를 빌려 영업하는(용선) 비중이 늘어났다. 당시에 비싼 용선료를 주고 계약한 것들이 최근 한국 해운사들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 교수는 “정부의 이 같은 해운업에 대한 접근 방식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비판했다.

한경연의 좌담회와 시각을 달리하는 인사도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진그룹과 조양호 회장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도의적 책임이나 법적 책임의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법정관리를 통한 회생 절차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지배주주의 책임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조양호 회장은 단순한 주주가 아니라 경영권을 행사한 지배주주이기 때문에 책임도 출자분에 한정된다고 할 수 없다”며 “지배주주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게 되는 만큼, 지금 내놓은 1000억원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지원에 나서 국책은행 등도 지원에 나설 명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호·문희철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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