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대화를 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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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대화가 중단된 지 7개월이 넘었다.
평양 측은 작년 12월의 회담을 끝으로 우리 「팀 스피리트86」훈련을 트집잡아 일체의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무기 연기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는 그동안 몇 차례 회담재개를 공식 요구했다.
팀 스피리트가 끝난지 3개월이 되는데도 북한은 회담을 속개할 아무런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은 새로 군사회담을 열자고 제의, 기존 대화들의 초점을 흐리려는 공작을 벌여놨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3년간의 군사적 충돌을 경험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유혈내전이었다. 우리의 남북관계가 동·서독과는 달리 이처럼 첨예화된 것도 실은 그 3년간의 전쟁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간의 군사회담은 그 어떤 분야의 회담보다도 미묘하고 어렵게 돼있다.
더구나 군사회담이 열리게 되면 무엇보다도 먼저 전쟁책임문제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적으로는 한때 평양이 주장하는 북침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지금은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증거들에 의해 북에 의한 남침이라는 결론이 일반화돼 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북한뿐이다.
평양은 남북군사회담에서 김일성이 져야할 전쟁책임 문제규명에 응할 용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어쨌든 우리는 군사회담은 오히려 남북관계를 긴장·악화시킬 소지가 많다는 현실을 인정하여 그것은 최후의 단계에 이루어질 성질의 것으로 믿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이미 열려있는 적십자회담·국회회담·경제회담에 전념하여 실질적 진전을 이룩, 나머지 분야의 회담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당장 열어야할 또 하나의 회담이 있다면 그것은 군사회담이 아니라 문화회담이다.
남북은 구석기 시대이래 공유하고 있는 우리 특유의 문화가 있다. 이 문화는 지난 40여 년간 서로 단절돼 뫘다. 그 결과는 우리 민족문화의 동질성 상실과 이질화다.
더구나 근래에 와서는 남북에서 석기시대의 유적과 삼국시대의 고분이 많이 발굴됐다. 이제 남북은 양쪽의 발굴성과를 상호 교류하고 공동 연구해야 할 필요성에 당면해 있다.
이런 현실성 있는 문화회담을 제쳐놓고 오히려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회담만 반복하여 주장하는 북측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우리측 수석대표들은 11일 다시 북한측에 대해 중단된 3개 회담을 8월중에 모두 재개하자고 제의했다. 체육회담은 IOC중개 하에 로잔에서 계속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는 적십자·국회·경제의 3개 회담 속개제의에 북한이 조속히 응해 오기를 기대한다.
적십자회담은 이산의 고통문제, 국회회담은 정치문제, 체육회담은 국제대회 공동참가 및 체육교류, 경제회담은 상호 교역과 기술·자본의 협력문제를 다룰 수 있어 우리가 직면한 남북문제는 이 기존 4개의회담에 모두 수용될 수 있다.
또 이들 회담의 진전이 없다면 다른 분야의 회담을 열어보았자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평양이 우리측 회담재개 요청에 조건 없이, 그리고 즉각 응해 오기를 촉구한다.
동족간의 대화에 무슨 조건과 명분이 필요하겠는가. 대화 자체가 최대의 명분이다.
북한은 공작과 술책의 차원을 초월하여 민족적 사명감을 가지고 보다 성실한 자세로 대화에 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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