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홍준표(62) 경남도지사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현직 도지사인 점을 고려해 법정구속을 하진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현용선)는 8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홍 지사에게 징역 1년6월의 실형과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 홍 지사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 경선을 앞둔 2011년 6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지시를 받은 윤승모(53) 전 부사장을 통해 현금 1억원이 든 쇼핑백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7월 불구속 기소됐다. 홍 지사에게 돈을 전달한 윤 전 부사장에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법원 “현금 1억 전달 신빙성 있다”
징역 1년6월, 추징금 1억 선고
현직 도지사 감안 법정구속 안 해
재판의 최대 쟁점은 성 전 회장이 생전에 한 진술에 대해 증거 능력을 인정할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이 지난해 검찰의 경남기업 압수수색 후 내부 대책회의에서 “비자금 중 1억원은 2011년 윤 전 부사장에게 줬다”고 한 진술과 목숨을 끊기 전 언론과 한 인터뷰 등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의 진술은 경위가 자연스럽고, 사건의 다른 관계자들의 진술 내용과도 부합해 형사소송법 314조에 따라 증거 능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314조는 ‘사망·질병 등으로 법정에서 진술할 수 없을 때라도 조서·서류가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해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해 증거로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돈을 줬다는 윤 전 부사장의 진술에 대해선 “당시로부터 4년이 지나 객관적 정황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신빙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홍 지사가 주장해온 윤 전 부사장의 ‘배달사고’ 가능성에 대해서는 “홍 지사의 측근들이 윤 전 부사장에게 검찰에서 사실과 다르게 진술해 달라고 제안할 때도 윤 전 부사장이 돈을 횡령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말했다”며 일축했다.
이날 홍 지사는 “이번 판결을 사법적 결정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정치적 판결’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성완종이 반기문 마니아인데 내가 ‘대선을 준비하겠다’(지난해 1월)고 말했다가 이렇게 됐다”며 “나는 친박도 아니라서 청와대가 부담이 없을 거라 생각해 성 전 회장이 ‘홍준표에게 돈을 줬다’고 검찰에 찔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노상강도를 당한 기분이다. 저승에 가서 성 전 회장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겠다”며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고, 항소심에서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자원개발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이 지난해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유력 정치인 8명의 이름과 돈 액수를 적은 쪽지를 남기면서 불거졌다. 홍 지사와 함께 리스트에 올라 불구속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오는 22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야당은 홍 지사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은 이날 논평을 내고 “당당한 경남을 외쳤던 홍 지사가 이번 유죄 선고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한편 오는 26일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가 홍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데 이번 선거 결과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경남선관위는 홍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에서 제출한 주민소환 투표 서명부 보정작업에 대한 유·무효 심사를 하고 있다.
글=김선미 기자, 창원=위성욱 기자 calling@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