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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없는 교육정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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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육제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대입 및 고입제도가 90년대엔 바뀌게 될 것 같다. 교육개혁심의회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개선안은 요컨대 대입 본고사를 부활시키고 고교평준화시책을 사실상 백지화함으로써 교육기관의 자율권을 확대시킨다는 방향이다.
물론 이 세상에 만인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고지선의 제도란 없다.
교육제도의 경우 특히 그렇다. 어떤 제도를 택하건 합격자가 있고 불합격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게 엄연한 경쟁원리다.
뿐더러 교육제도의 잦은 변개는 갖가지 부작용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학교교육을 오도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제도는 빨리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 대입현장의 지옥도 같은 눈치싸움이 공정한 경쟁원리를 왜곡시켰다는 지적이 나온 지는 오래 된다. 고교만 해도 당초부터 불가능한 평준화 시책을 강행한데서 빚어진 갖가지 폐해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현행 입시제도가 안고있는 이 같은 모순은 시정되어야 한다는 요청과 함께 21세기를 향한 전향적인 교육제도의 확립이란 명제가 맞아 떨어져 이룩된 것이 이번 교육개혁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단 교육제도뿐 아니라 사회가 다원화·산업화함에 따라 각 계층이나 이익집단의 자치 내지 자율권 확대는 시대적 추세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번 교육제도 개선방안을 평가하는 것은 그런 뜻에서다.
새 제도라고 하지만 물론 우리가 경험을 못한 완전히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대학입시의 본고사나 고교의 선 지원-후 시험 제도는 현 제도이전에 이미 시행되던 제도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교육제도도 헌법만큼이나 자주 바뀌고 바꾼 동기가 집권층의 독단이나 행정독주의 산물이란 측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당시의 제도가 입시과열, 사학의 비리 등 갖가지 부작용의 근원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대입·고입제도 개선이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에만 그쳐서는 무의미하다.
현행 제도의 미비점이나 모순은 과감히 고치되 지난날의 제도가 지녔던 폐단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신중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원칙이나 대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각론이다. 새로운 제도의 순탄한 정착을 위해 유예시킨 기간은 3년 남짓 된다. 그동안에 일선교육자들과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모아 다시는 쉽게 흔들리지도 않고 고칠 필요도 없는 미래지향적인 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이번 개선방향은 조그마한 출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교육제도의 각론 정립을 위해 당장 시급한 것은 교육현장의 소리부터 경청하고 수렴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교육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전문가는 대학교수들과 일선교사들이다. 이들의 요구를 도외시하고 만드는 교육제도는 탁상공론에 흐르기 쉽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했다. 「획일 화」로 생긴 병원은 「다원화」란 처방으로 치유할 수밖에 없다. 개성과 창의성 존중이 21세기교육의 목표라고 한다면 교육은 교육자에게 맡기고 행정은 교육을 뒷받침하고 지원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앞으로 3, 4년의 「유예기간」의 선용여부가 우리 교육제도의 정착을 좌우한다 해서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졸속·행정편이, 조령모개·시행착오란 평만이 교육제도에 쏟아지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겠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또 새 제도 실험의 마르모트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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