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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테르나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보리스·파스테르나크」가 1958년 『의사 지바고』로 노벨 문학지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당시 소련문화상 「미하일로프」는 이런 말을 했다. 「파스테르나크」는 번역가나 시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산문작가로는 별 재능이 없다.
자기 나라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식을 듣고 칭찬은 커넝 헐뜯기에 바쁜 이유는 간단하다.
「파스테르나크」의 이 소설은 공산주의혁명 와중에서 겪는 러시아 인텔리의 비극을 그린 일대 서사시였다. 그래서 당국의 눈을 피해 57년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처음 출판되었고, 책이 나오자마자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노벨상 수상 선정으로 당황한 소련당국은 모스크바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군중집회를 열고 「배신자」, 「악독한 속물」, 「반동적인 졸작」등 험담은 모두 동원, 「파스테르나크」를 비난했다.
더욱 흥미 있는 것은 주요 일간지, 주간지에 실린 독자의 편지.

<나는 무례한 「파스테르나크」의 작품을 읽은 적은 없지만…거짓된 소설로 보건대, 그를 조국에서 추방하는 것이…>좋다는 의견이 연일 대서특필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관제임은 「파스테르나크」가 대중들 앞에서 자작시를 낭독할 때 드러난다. 「파스테르나크」가 자기의 시구를 잊고 잠시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수 천명의 청중 전체가 하나의 프롬프터가 되어 그의 잊어버린 시행을 합창으로 낭독하는 것이다.
하지만 「파스테르나크」는 노벨상의 영예도 누려보지 못한 채 60년 적막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족들은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그의 집에서도 쫓겨나야 하는 비운까지 겪었다.
그 「파스테르나크」가 곧 「복권」되고 지금까지 금서로 되었던 『의사 지바고』도 머지않아 햇빛을 보게 될 모양이다.
이 같은 소련 문화계의 해빙현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크렘린이 전통적인 관료주의 때문에 고심하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그래서 「고르바초프」는 집권하자마자 이 관료주의를 없애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카드로 내놓은 것이 「문화예술」을 이용하는 아이디어.
「고르바초프」는 지난 6월말에 있은 소련작가동맹 전국대회를 앞두고 그 간부들을 불러 『작가들은 관리의 위선을 품자했던 「고리키」의 문학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부추겼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소련의 해빙현상은 그 두꺼운 동토의 겉만 적시고 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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