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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원더걸스에 기죽지 않아…서울대 벨리댄스 동아리 ‘자스민’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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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서울대 축제 폐막식. 원더걸스가 피날레를 장식한다는 말에 남학생들이 구름떼처럼 몰린 그날, 아이돌에 기죽지 않고 압도적 공연을 펼친 또 하나의 팀이 있었으니 바로 서울대 여학생들로 결성된 벨리댄스 동아리 자스민(Jasmine)이었다. 2007년 서울대 자연과학대에서 등장한 이후 학교 축제를 책임져 온 전설적 공연의 시작이었다. 인서울 대학 유일의 벨리댄스(Belly Dance) 팀 자스민을 찾아가봤다.

자스민의 '노노노' 공연 영상

지난 3일 서울대 두레문예회관의 무용 연습실에서 아랍풍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가가 자세히 보니 의상도 예사롭지 않았다. 자스민 소속 여학생 10여 명이 대학 축제에 올릴 공연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자스민’은 알라딘에 나오는 공주. 오리엔탈 공주풍 옷과 정교한 몸동작이 학생들의 평범한 취미 동아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관악골(서울대 캠퍼스 소재)에 이국적인 춤을 추는 여학생들이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전문 댄서 못잖은 실력으로 아랫배를 연신 흔드는 모습에 여기가 대학 캠퍼스인가 의심스러웠다. 벨리댄스 제1의 꽃이라 불리는 ‘쉬미(shimmy·진동)’ 동작이다. 차바퀴가 진동하듯 아랫배가 파르르 떨린다. 어깨를 흔들면 숄더 쉬미, 무릎을 흔들면 니 쉬미가 된다. 벨리댄스의 여성미를 강조하는 또 다른 동작은 ‘힙 서클(hip-circle·골반 돌리기)’. 허리띠의 동전 모양 장식들이 골반과 함께 사정없이 찰랑거린다.

주말이었지만 자스민 회원들은 초빙 강사의 구령에 맞춰 안무를 하나하나 체득하고 있었다. 흔히 벨리댄스는 상체와 하체가 따로 놀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배우기 만만찮다. 쉬미나 힙 서클, 힙 바이시클(hip-bicycle·한쪽 골반 돌리기) 같은 동작은 평소에 쓰지 않는 미세한 근육들을 움직여야 해 하루아침에 따라 할 수 없는 고난도 스킬이다. 그들은 왜 벨리댄스를 하는 걸까?

“남들이 다 하는 흔한 춤은 별로잖아요. 대학 축제 때 선배들의 열정적인 공연을 보고 ‘이거다’ 싶었죠. 한눈에 반해 친구와 같이 들어왔어요.”


사범대 영어교육과 3학년 이지현 양은 2년 전 자스민에 들어올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이 양이 꾀어 함께 가입한 친구가 지금 자스민 회장을 맡고 있는 같은 과 13학번 강하은 양이다. 이 양을 비롯한 몇몇 회원들이 교환학생 등으로 빠져나가면서 한때 동아리가 기로에 선 적도 있었다. 초창기 멤버들의 개척자 같은 불꽃 열정을 이어 줄 후배 회원의 모집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리와 배꼽이 훤히 드러난 전통 의상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올해엔 신입을 대거 충원했다. 노출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강 양은 “배가 이 춤의 핵심이니까 어쩔 수 없다”면서 “의상도 춤의 일부이기 때문에 요즘 젊은 대학생들은 예술로 이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우리들끼리도 굉장히 쑥스러웠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미소 지었다. 모든 춤에는 어느 정도 관능미가 있기 마련이지만 벨리댄스는 특히 여성미가 두드러진다. 다산을 기원하는 아랍의 전통 춤답게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한때 ‘지성의 전당’에서 여성성은 여성주의(페미니즘)에 반하는 것으로 곡해돼 왔다. 여성성은 감춰야만 하는 것, 나약함으로 치부됐지만 지금 대학가를 활보하는 미니스커트의 물결에서 보듯 여성성을 드러내는 건 당당한 자기표현이다.

강 양은 “벨리댄스에는 섹시한 동작만 있는 게 아니고 절제되고 우아한 면도 있다”면서 “꼭 신나고 흥겨운 곡이 아니라 발라드나 탱고 같은 서정적이고 잔잔한 음악에 접목하는 춤도 많다”고 소개했다. 무엇보다 내 몸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수련에 수련을 더해야만 춤사위가 완성돼 가는 희열이 대단하다고 한다. 쉽게 접하기 힘든 희소성도 벨리댄스에 입문하게 만드는 마력이다. 벨리댄스의 본고장 터키에서 배우러 올 정도로 지금 한반도에 벨리댄스가 열풍이지만 아직 대학생 사이에서는 희귀한 장르란다. 어디 가서 장기 자랑을 하면 입상은 따논 당상이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김미정 아이비퓨전벨리댄스학원 원장은 “학생들이 테크닉을 습득하는 속도도 엄청나지만 끼도 많아 사실 놀랐다”며 “공부벌레에 몸치라는 서울대생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완전히 깨졌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대로 회원들의 외모도 하나같이 출중했다. 강 양은 “동아리 가입 후 대부분 체중 감량을 경험한다”면서 “7~8kg을 뺀 회원도 봤다”고 밝혔다. 벨리댄스 자체가 주는 에너지 소모도 적지 않지만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뱃살을 빼는 운동을 따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운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던가. 자스민의 정기 공연 제목이 ‘Hips don’t lie’다.

벨리댄스는 이집트가 발상지라는 말도 있지만 이슬람 문화권 전반에 매우 널리 퍼져 있는 보편적인 춤이다. 원래는 맨발 차림이라 공연 중 발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살색 슈즈를 신기도 한다. 전신을 고루 움직이는 격렬한 스포츠 댄스로 근래 각광받고 있는 벨리댄스는 사실 라틴이나 힙합을 가미한 퓨전 벨리라 할 수 있다. 또 베일과 윙 같이 색이 예쁘고 커다란 도구를 써 군무를 선보이면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팬베일(pan vail)을 사용한 그룹 댄스는 우리 부채춤을 연상시켰다.

자스민의 팬베일 공연 영상

2014년 2월 서울대 신입생환영회에서 축하 공연을 하는 자스민. [사진제공=자스민]

2014년 2월 서울대 신입생환영회에서 축하 공연을 하는 자스민. [사진제공=자스민]

그렇게 4~5명이 호흡을 맞춰 하나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나면 어느덧 동아리원들끼리 자매처럼 가까워진 걸 느끼게 된다. 강 양은 “처음엔 엄마가 ‘무슨 댄스냐’고 걱정을 하셨는데 이제는 서울에서 자취하는 딸이 외롭지 않은 좋은 취미를 가졌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보기 드문 여초 동아리라는 점도 친목 도모에 영향을 끼쳤다. MT를 가도 술보다는 주전부리로 밤새 수다를 떤다고 한다. 사실 남학생 입회를 막고 있지는 않다. 이 동아리가 해를 거듭하면 언젠가 국내 남성 벨리댄서 1호 김도형 같은 남학생 회원이 나올지도 모른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서울대 축제. 아이돌 가수가 점령한 다른 대학들과 달리 학내 동아리 위주로 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 3대 바보’가 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정문까지 걸어가는 사람, (‘노잼’인) 서울대 축제 보러 가는 사람, 고교 때 1등 한 거 자랑하는 사람. 서울대 축제에 가는 사람은 3대 바보에서 빼 달라고 자스민 회원들은 춤으로 말하고 있었다.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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