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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구 살아있는 전설' 김주성, "은퇴는 아직…후배들에게 노하우 전하고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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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주 동부

'한국농구의 살아있는 전설' 김주성(37·원주 동부)의 농구 시계는 계속 흐르고 있다.

프로 14년 차 김주성은 '기록의 사나이'다. 프로농구 최초로 1000블록슛을 돌파했고, 통산 리바운드 2위, 통산 득점 3위에 올라있다. 2016-2017시즌 전지훈련지 일본 가와사키에서 김주성은 변함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4일 만난 김주성은 "프로 초창기에 허재(51) 감독님과 함께 뛰었다. 당시 감독님 아들인 허웅(23)이 농구장에 놀러와 '삼촌'이라 부르며 따라다녔는데, 웅이와 같은팀에서 3시즌째 뛰고 있다. 세월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주성은 2007-2008시즌 통합우승 등 높고 단단한 '동부산성'을 이끌었다. 하지만 1979년생 김주성은 부상과 사투 중이다. 김주성은 "지난 시즌 왼쪽무릎인대가 끊어졌고, 오른 발가락 인대는 몇mm 정도 벌어졌다"며 "자려고 누웠는데 '이대로 은퇴하는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몸 상태가 나아졌고 계속해서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성은 올 시즌을 끝으로 소속팀 동부와 계약이 끝난다. 김주성은 "프로야구 이승엽(40·삼성) 선수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철저한 몸관리를 통해 대기록을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며 "난 올 시즌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하며 돕고, 기회가 된다면 한 시즌 더 뛰고 40세에 은퇴하고 싶다. 팀 우승에 힘을 보태고, 개인적으로는 통산 1만점(현재 9497점)을 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김주성은 "외국인 선수들과 몸싸움에서 자주 넘어진다. 살아남기 위한 플레이였는데 실망한 팬분들이 계신다. 선수생활 남은 1~2년 동안 팬분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주성의 아버지는 소아마비 후유증, 어머니는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다. 고1때 뒤늦게 농구를 시작한 김주성은 가족을 생각하며 뛰었다. 김주성은 "어릴적 가족이 단칸방에서 지내기도했다. 부모님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잘 키워주셔서 늘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주성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17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부상을 안고도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한국남자농구 선수 중 유일하게 2차례 아시안게임 금메달(2002년·2014년)을 목에 걸었다.
김주성은 "대표팀 경기까지 포함해 1년에 70경기 이상을 뛴 적도 있다. 눈 뜨면 태릉선수촌이고, 다시 눈뜨면 소속팀이었다"고 회상했다. '혹사'란 단어에 대해 김주성은 "남이 억지로 시키면 혹사다. 반면 내가 좋아서하면 혹사가 아니다. 난 행복했고, 악으로 깡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신해용 동부 단장은 "김주성이 아시안게임으로 받은 연금을 남몰래 장애인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주성은 '한국농구 기둥'이란 말에 손사래쳤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대표팀에 처음 뽑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당시 문경은(45), 서장훈(42) 등 대선배들을 보고 신기했다. 너무 긴장해서 난 '어리버리'라 불렸다"며 "난 한국농구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가 아니다. 농구계 훌륭한 대선배님들 이야기가 나올 때 끝자락에 내 이름만이라도 나온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가와사키=박린 기자 rpark7@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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