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남한에 있는 건 모두 내 것"|최-신 부부 WP지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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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장두성 특파원】다음은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이번 주 워싱턴포스트지의「돈·오버도퍼」기자와 가진 두 번째 회견 전문이다.
북한의 고립되고 괴상한 지도자 김정일은 남한을 무력으로 접수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으며 74세의 김일성이 살아 있는 동안 행동을 취할 유혹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고 신상옥과 최은희 양인이 말했다.
지난 3월 13일 오스트리아주재 미국대사관에 망명한 신·최 두 사람은 폐쇄된 평양지도자의 측근으로 움직인 극소수 외부인사 중에서 외부로 나와 그쪽 상황을 전할 수 있게 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지난달 첫 회견에서 신들은 8년 전 김정일의 직접 영에 따라 홍콩에서 북한으로 납치되었다고 말했었다.
최근 두 번째 회견에서 이들은 한 지도자들과『철저한 독재체제』아래서의 그들이 겪은 일상생활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했다. 이들은 북한을 위해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동의한 이후 최상의 대우를 받았으며 김정일과 최소한 10차례, 총 30∼40시간 동안 직접 만났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소년시절 이래 외부세계에 거의 나온 적이 없으며 외국인과의 개인적 접촉을 피해 왔다.
신·최 두 사람은 평양에서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뿐 아니라 다른 지도자들과도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그들이 제공한 정보는 북한의 권력내부 움직임에 관해 미국이 갖고 있던 지식을『엄청나게 발전시켜 줬다』고 미국무성 관리는 말했다.
남한에 대한 김정일의 태도는『남쪽에 있는 것은 모두가 자기 것』이라는 식이라고 이 관리는 말했다.
그는 김정일은 북한이 기술과 생활수준에 있어서 남한에 뒤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나 그래도 남한을 접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지도자들은 신·최 부부에게 군사계획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북한무력부장 오진우가 사교 석상에서 북괴군이『1주일 안에』부산까지 밀고 갈 수 있다고 장담했다는 말을 인용하더라고 이들은 말했다. 최은희씨는 오진우가 자기는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남한에는 60만 명의 한국군과 4만 명의 미군이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전격 전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1950년 북괴군은 기습 전으로 38선을 뚫고, 6주만에 부산근방까지 왔다가 격퇴 당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초토화되었다.
신·최 부부의 분석에 따르면 전쟁의 위험은 김일성이 살아 있는 동안에 가장 크다. 신에 버금가는 아첨을 받고 있는 김일성은 죽기 전에 통일을 눈으로 볼 것이라고 말한 북한관리들의 말을 이들은 인용했다.
최씨는 북한에서 세뇌교육을 받는 도중 통일은 한국의 노동자, 진보적 학생, 진보적 지식인들이 관련된 내부소요로 조건이 성숙돼 있다는 내용의 교육을 받았다.
북한은 겉보기에 안정이 돼 있는 것 같지만 김일성이 사망하면 김정일은 실각할지도 모른다고 신씨 부부는 예견했다.
신씨는 김일성이 김정일을 위해 매우 철저하게 권력이양 준비를 해 왔으나 시기가 오면 왕조 식 권력세습에 대해 북한내부의 저항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최 부부는 1984년 신정에 김일성을 만나 사담을 했다고 말했다.
김일성과 만났을 당시 그가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큰 소리로 말하도록 지시를 받았었다고 전하고 김일성은 또 걷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김정일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지도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아 왔으며 자신만만하나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인물로 생각됐다고 이들 부부는 말했다. 이들은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일반 국민들은 북한 사람과 비교해 보면 거지라고 김정일이 자신들에게 한 말을 인용해 김정일은 외부세계를 포함, 중요한 문제들을 잘 알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했다.『때로는 신문 한 페이지에서 화려하게 수식어가 붙은 김일성의 이름을 1백 번이나 읽을 수 있다』고 신씨는 말했다.
최씨는「위대한 수령」이라는 말이 라디오 뉴스보도에서 너무 자주 인용돼 뉴스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을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신·최씨는 TV와 라디오가 북한방송만을 보고들을 수 있도록 고정, 제작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이 북한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면 얘기를 듣는 사람은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기립자세를 취한다고 이들은 밝혔다. 심지어 김정일이 신·최씨에게 보낸 메시지를 읽을 때에도 영화제작 스튜디오의 참모 진들은 기립했다고 이들은 말했다.
김정일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김일성과 함께 거의 모든 방에 걸려 있는 그의 초상화 밑에서 감사의 표시로 예식을 행하는 것이 관례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이러한 예식이 때로는 김정일의 초상화 밑에서 절을 하고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 등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이 영화를 한번 감상했던 극장이 그 후 국립문화센터가 되었으며 학생 때 캠핑을 했던 산은 그 캠핑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고 신·최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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