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수습과 구속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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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몇 달 사이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민주화」니, 「개헌」이니 하는 소리만 해도 큰일날것 같더니 집권당대표조차 「나라의 진정한 민주화」를 시대적 목표로 내세우게 되었으며, 여당이 오히려 조기개헌에 열을 올리는 인상마저 주고있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는 듯 법원과 검찰에서 시위관련 대학생들이 잇달아 풀려나고 있다. 최근 법원은 개헌을 요구하며 시위를 한 학생들에게 『시위는 헌법이 보강한 일종의 표현의 자유의 한 방법』 이라는 이유를 들어 첫 무죄판결을 내렸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였지만 법정태도가 좋았던 학생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검찰도 시국관련 구속자들에 대한 선별 기소방침에 따라 구속 송치된 시위주동 여학생을 기소유예로 석방한데이어『앞으로도 개전의 정을 보인 구속학생들은 과감히 기소유예로 석방할 방침』임을 밝히고 있다.
이들이 시위를 벌인 원인이나 구속에 이른 사유를 따지기 전에 구속학생들이 자유의 몸으로 풀려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구속자 석방문제는 「대 타협」에 이르는 도정에서 가장 예민한 정치현안으로 등장했다. 야당은 국회의「헌특」구성의 전제조건으로 구속자 석방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있으나 정부·여당은 전면 석방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야쪽 주장이 아니더라도 개헌과 민주화를 하겠다는 마당에 민주화를 요구하다 구속된 사람들을 계속 가두어 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합당개헌」의 분위기조성을 위해서도 구속자들의 조속한 석방은 국민적 여망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6·3청와대회동을 통해 구속자 석방의 대 원칙은 확인되었으나 그범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의 폭이 크다.
노총리는 국회답변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폭력에 의해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소수를 제외하고는』석방할 방침이라고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였다.
국기에 관련되는 범죄는 물론 엄히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설혹 방법이나 행동이 과격했다고 해도 시위의 목적이 순수하게 개헌이나 민주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석방의 범위에 넣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 동안『법대로』라는 명분의 법의 남용이 오히려 법의 권위를 떨어뜨린 결과를 빚은 경우도 우리는 보아왔다. 그와 같은 법의 경직된 운용은 순리를 통한 시국수습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표현 자유의 한 방법으로서 평화적인 집회나 시위는 절대 보장되어야 하고 집시법도 이런 점에서 엄격히 적용되어야 한다.
집시법 제3조의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 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 및 시외」등 금지조항도 막연히「사회불안조성」 을 자의로 해석되어서도 안되며「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이 준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법 해석과 적용에 시류의 변화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며 어디까지나 헌법의 기본정신이 철저히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개헌서명운동이 정부입장과 다르다고 하여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 되고 불우이웃돕기 거리캠페인은 처벌대상에서 제외되는 어리석음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법적용이나 절차에 매달리기보다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적으로 푸는 것이 시국을 푸는 주요 관건임을 새삼 강조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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