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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거짓말이다』① 물속 진실과 물 밖 거짓말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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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탁환 인터뷰

현실이 소설의 상상력을 뛰어넘을 때, 작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세월호를 소재로 한 첫 장편 소설 『거짓말이다』(북스피어)의 김탁환(48) 작가를 TONG청소년기자단이 만났다. 고1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10명의 기자단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속절없이 가라앉던 날, 어느 중고교 교실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10대를 호명하는 이름은 다양하지만 한국의 학생들에겐 ‘세월호 세대’라는 아픈 수식어가 하나 더 붙었다. TONG기자단만을 위한 김 작가의 간담회는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열렸다.

소설은 그 또래 아이들을 물 속에서 물 밖으로 건져냈던 민간잠수사의 이야기를 중심 축으로 삼는다. 이 소설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류창대(60) 잠수사를 위해 나경수(37) 잠수사가 쓴 탄원서가 긴 뼈대가 되고, 그걸 둘러싼 여러가지 장면과 인터뷰가 갈빗대처럼 엮인다. 거기에 작가는 피와 살을 붙여 거대한 고래 같은 이야기를 빚어낸다. 피와 살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었을지라도, 뼈대는 현실의 사건과 팩트 날 것 그대로다. 가령 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고 이광욱 잠수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된 공우영 잠수사가 소설 속 류창대 잠수사의 모델이다.

이하나(신서고 1): 이 책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뭔가요?
"2015년 2월 장편 『목격자들』을 발표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세월호 같은 대형 해난 사고를 찾아 원인을 분석하고 잘잘못을 따져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쓰기 시작했죠. 최선을 다해서 썼는데, 1주기가 다 되어가도록 세월호에 대한 진상 규명도 안 되고 유가족들은 더 힘들어 하시고. 소설을 잘 쓰는 것과 실제 일이 좋은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은 별개더라고요. 글을 잘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자괴감이 들죠. 그래서 술을 좀 많이 먹고 다녔어요. (웃음) 그때 생각했던 게, 이제 다시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300년 전의 어떤 역사적인 사실에 은유나 비유를 하는 게 아니라 사건 그 자체를 다룬 그런 글쓰기를 해야 되지 않을까…. 그냥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2015년 2월부터 쭉 했어요.

기회가 찾아왔던 건 2015년 가을에 ‘4.16의 목소리(https://www.facebook.com/416voice)’라는 팟캐스트 사회를 맡으면서였어요. 유가족을 만나서 계속 인터뷰를 하고 매주 이야기를 듣는 거죠. 그 전엔 유가족을 잘 만나지도 못하고, 광화문에 가도 삐죽삐죽하고 그랬는데 6개월 그 과정을 거치니까 안으로 쑥 들어와 있는 거죠. 장편 쓸 때는 어디에서 바라볼 것인지, 작가의 위치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요. 올들어 한 3월 정도부터 세월호에 관해서 장편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배를 이야기하면 이게 진짜 배고, 사람을 이야기하면 진짜 그 사람이고. 한참 생각해서 비유나 상징을 따져 봐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1대1 대응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장편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 소설을 쓸 수 있게끔 점점 조금씩 조금씩 나아갔던 것 같아요. 2014년 6월부터 2016년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나아가고 있는 과정 속에 있고요. 그 과정 속에서 『목격자들』도 쓰고 팟캐스트도 하고 『거짓말이다』도 내고 또 그 다음은 모르겠어요."

장단비(신서고 1): 이 책 쓰기 전과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굉장히 다르죠. 똑같으면 책을 쓸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나서가 똑같으면 사실 그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요. 물론 작품을 쓰기 전에는 구상이란 걸 하죠. ‘아, 뭐 이런 게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서 인물도 정하고 스토리도 잡아 보고. 그런데 그런 것들은 실제로 쓰는 과정에서 다 깨지거든요. 가령 제가 맨 처음에 소설 쓸 때는 잠수사 나경수가 잠수 들어가는 첫날인 4월 22일부터 윤종후 데리고 나오는 장면까지 4페이지 정도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거의 일주일을 썼는데도 계속 들어가 있는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한 이십 몇 페이지 썼더라고요.

세월호가 크게 보면 두 부분, 수중에 관한 이야기와 육상에서의 이야기로 나뉘거든요. 육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다 접할 수 있어요. 기사 뒤져보고 사람들을 만나볼 수도 있고. 그런데 물속에서 배가 어떤 상황인지, 침몰하고 나서 희생자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이런 것들은 누가 들어가 봐야 되잖아요. 그렇게 들어가 본 유일한 사람은 민간 잠수사들인 거죠. 제가 글을 쓰면서 깨달은 거죠. 이건 처음이다 처음. 이건 아무도 쓰지 않았던 이야기다. 가령 세월호에 대해서 ‘난 모르는 게 없고 지루해요. 피곤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이건 모를 거라는 거죠. 한 번도 잠수사의 시선으로 배 안으로 들어가보지 않았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세월호 이야기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 세계를 내가 지금 처음 쓰고 있는 거구나…. 처음 쓰고 있으니까 잘 써야겠다. 네 페이지로 설렁설렁 쓸 문제가 아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써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조사도 훨씬 많이 했고요. 잠수사들 인터뷰 뿐만 아니고 배 지도도 다 구하고 잠수 위치도 다 확인하고 희생자을 넘버링 해서 수습되었는데, 그것과도 맞춰보고. 그래서 몇 월 몇 일은 그 배의 몇 번 방으로 어떻게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 이런 걸 다 확인했어요.

침대 뒤 그 좁은 공간에 남학생 세 명이 원을 그리듯 어깨동무를 하고 뭉쳐 있는 겁니다. 종후까지 네 아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마지막 순간을 맞았을 겁니다. 엇갈려 붙든 어깨와 손을 더듬는데 다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81쪽)

그걸 쓸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제일 고통스러웠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물속으로 인물을 밀어 넣어 놓으면 그게 너무 힘들거든요. 등장인물이 공기 속에 있으면 쓰다가 그냥 내버려두고 내가 딴짓하다 또 끄집어내서 써도 되거든요. 그 동안 얘는 숨 쉬고 잘 살고 있을 거니까. 그런데 잠수사는 물속, 앞이 한 10센티~20센티미터 밖에 안 보이는 뻘 밭 속에 밀어 넣어놨잖아요. 배가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그러니 밥 먹다가, 자다가 벌떡 깨요. 내 주인공은 생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자면 되느냐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확 깨가지고 막 써요. 그러니까 거의 못 자고 못 먹고 썼어요. 그런 걸 한 번 경험하고 나면 그걸 경험하기 전과 되게 다르죠.

그냥 ‘잠수사들이 배에 들어가서 시신을 수습해 왔다’라고 해도 사실이잖아요. 근데 제가 그걸 22페이지나 써서 그 한 문장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는 거니까 사실이 훨씬 넓고 깊어지는 거죠. 소설가들이 원래 하는 일이 그거예요. 일반인들이 한 문장으로 이야기 하는 것들을, 그 한 문장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를, 한 문장이 그 한 문장으로 완성되기 위해서 사람들이 어떤 고투를 하는가를 보여주는 거니까. 『거짓말이다』를 쓰면서 그런 장면들이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아주 행복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몽상을 하면서 쓸 수 있는 소설이 아니고, 굉장히 집중해서 해야지만 겨우 쓸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그런 댓글이나 문자가 오면 되게 좋아요. ‘읽기 전엔 몰랐다. 읽기 전에는 이런 건 줄 몰랐다. 읽고 나서 내가 진짜 뭘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소설을 쓰면서는 ‘물속의 진실, 물 밖의 거짓말’ 이렇게 생각이 되더라고요. 물속에 들어가서 희생자를 모시고 나오는 전체 과정은 거짓이 없어요. 거짓이나 사기가 있으면 모셔서 나올 수 없는 거죠. 다 사실인 거예요, 다. 반면 물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내는 어떤 거짓이고요. 저는 이 사람들이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수습을 하고 병이 들고 재판에 걸리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물 밖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거짓말들을 하고 있었나를 대비 시켜서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물속과 물 밖. 잠수사와 잠수사가 아닌 다른 여러 세월호 관련자들로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 거죠."

“종후에게 미안했습니다. 제가 단단히 꽉 붙들고 한 몸처럼 움직였어야 하는데, 안는다고 안았지만 저도 모르게 틈이 생겼나 봅니다. 다시 더듬어 종후를 찾았습니다. 이번엔 종후가 꾸부정하게 누웠습니다. 따라 눕듯 종후 곁으로 가서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한 번만 더 아저씰 믿어. 다신 놓치지 않을게.’” (82-83쪽)

2014년 5월 전남 진도 앞바다 세월호 사고해역에서 한 잠수사가 수색을 위해 입수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2014년 5월 전남 진도 앞바다 세월호 사고해역에서 한 잠수사가 수색을 위해 입수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권다은(전북대 1):잠수 장면 말고 가장 공들여 쓴 부분이 있다면요.
"생일 모임이요. 실제로 정혜신(http://page.is/jeonghyesin) 박사가 생일 모임을 하고 있어요. 부모들이 제일 힘들 때가 애 생일이 다가올 때거든요. 아이가 250명이니 부모는 곱하기 2 해서 500명이잖아요. 500명이 돌아가면서 아프니 정혜신 박사가 자기만의 생일파티법을 만든 거예요. 아이에 대한 중요한 물건을 다 꺼내 진열해놓고, 사진도 꺼내놓죠. 그날 초중고 친구들이 오는 거예요. 사귀었던 친구도 오기도 하고요. (웃음) 남학생 생일 모임에 두 번 갔는데, 한 시간 반 정도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부모들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놀라고 고마워해요. 나도 부모지만 우리 애가 어떻게 사는지 되게 조금만 알거든요. 산 자와 죽은 자가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 해도 방법이 필요한 거예요. 뭘 기억하나, 304명 250명 이런 숫자를 기억하나, 맹골수도에서 침몰했다는 걸 기억하나? 사람을 기억하는 거잖아요. 그 방법 중 하나가 생일모임, 한 인간의 삶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를 모아내는 자리죠. 이야기로 기억해야 해요. 그것도 이야기꾼이 해야 하는 임무 중 하나고요.

또 하나는 교회에서 목사님이 침몰은 신의 뜻이었다고 설교하는 장면이었어요. 영화 ‘밀양’ 보면 그런 장면 나오잖아요. 자기 아이를 유괴해서 죽인 범인을, 주인공이 크리스천이어서 용서해주려고 면회했더니, 그 사람이 자기가 기도했는데 신이 벌써 나를 용서했다고. 그 장면하고 겹치더라고요. 자식 잃고 비탄에 잠긴 부모들 인간을 위로해야 할 성직자가 신의 뜻이니 슬퍼하지 말고 교회 생활 열심히 하라는 식의 설교를 했다는 거죠.

믿음이 약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이번 참사에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며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거룩한 교회에서 더 오래 머물며 성도들과 함께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교회 생활을 게을리하고 거리로 나가 집회나 시위를 하면서, 세속적인 인간의 관점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126~127쪽)

쓰면서 슬펐어요. 지어낸 게 아니라 사실이거든요. 소설은 너무 참혹한 부분들은 약화시켰고, 많이 만졌어요. 내 소설 주인공 나경수는 동거차도에 가서 선체 인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가 끝나지만, 실제 나한테 이야기해준 네 명의 잠수사 중 하나인 김관홍 잠수사는 죽었잖아요. 소설보다 현실은 더 어둡고 참담해요. 그래도 결말을 더 어둡게 쓰면 유가족이 읽으면서 진짜 슬퍼할 것 같았어요. 약간의 희망을 주면서 끝냈죠.

[관계 기사] [권석천의 시시각각] 바로잡습니다http:www.joongang.co.kr/article/20419116

그런데 날씨가 선선해져서 동거차도에 가을이 온 거예요. 지난주 일주일간 어머니들이 동거차도에서 모기 물리며 생고생하고 있더라고요. 가을로 접어드니까… 오늘 아침엔 찬 바람이 부는데, 내 소설이 쓰지 않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구나, 쓰지 않은 소설 첫 페이지인데 시작이 어둡구나, 가을은 더 참혹해지면 어떻게 하지… 그럼 내가 더 써야 되나…. 결국 내가 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거예요."

(이어서 계속)

[고 김관홍 잠수사 추모 영상 '나 김관홍이야']
https://youtu.be/JVZMEa6Ms_M

인터뷰=권다은(전북대 1)·박주민(고양일고 1)·장단비(신서고 1)·이하나(신서고 1)·이정민(무학여고 2)·이수연(산본고 2)·김나영(산본고 2)·이지언(상산고 2)·임찬양(단원고 2)·이지혜(단원고 2) TONG청소년기자
진행=김재영 인턴기자
글=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이어지는 기사]
김탁환 인터뷰 『거짓말이다』② 100개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
(http://tong.joins.com/archives/30831)

김탁환 인터뷰 『거짓말이다』③ 세월호는 이전의 참사와 달라
((http://tong.joins.com/archives/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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