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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싸워도 AIIB 손잡은 중국·노르웨이처럼 투트랙 외교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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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국과 외교적 갈등을 겪었던 나라는 적지 않다. 미·일은 물론 노르웨이와도 중국은 인권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한쪽이 막히면 다른 길 뚫어라
영토 문제로 충돌한 중국·필리핀
양국 정상은 경제협력 확대 약속
국가 간 갈등, 공공외교도 해법
“한·중 교류 민간 단체만 수천 개
이들을 친중·친한파로 만들어야”

2010년 중국은 노르웨이 노벨 평화상위원회가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를 수상자로 결정하자 보복 조치로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했다. 중국의 보복성 금수 조치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2013년 중국의 북극 이사회 옵서버국 가입을 지지했다. 중국도 지난해 노르웨이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 멤버로 가입할 때 협력했다. 양국은 인권 문제에선 충돌했지만 경제 분야에선 협력하는 투트랙 외교를 벌이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 베트남의 마찰도 현재진행형이다. 2014년 5월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파라셀 제도 인근에 중국이 석유 시추 장비를 설치하자 베트남의 초계함이 출동해 중국 군함과 충돌한 적도 있다. 베트남 경비대원들이 다쳤고, 이후 베트남의 반중 시위대가 중국인이 소유한 자국 내 공장을 습격해 불을 지를 만큼 양국 국민들의 감정은 격화됐다. 이에 중국은 두 달 뒤 슬그머니 석유 시추 설비를 철수했다. 이듬해인 2015년 베트남과 중국 정상은 양국을 상호방문해 경제협력 확대를 약속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 이후 한·중 관계에도 이런 접근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필요하다면 적 앞에서도 웃어야 하는 게 외교”라며 “사드 갈등과는 별개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만들고 새 분야에서의 협력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가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 방법의 하나로 타국 국민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관계를 구축하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꼽았다.

공공외교는 군사·경제력 등 하드파워가 아닌 문화 등 소프트파워를 활용해 자국에 대해 긍정적 생각을 갖도록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사드 배치 발표 직후인 7월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칭화대(淸華大)가 주최한 제5차 세계평화포럼(WPF)에 참석했던 한국 측 인사는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행사장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인이 보기엔 북한의 위협에 대해 중국이 우리만큼 절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중국이 북핵 위협이란 근본 원인 제거를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김정은이 이를 역으로 이용한다는 아쉬움도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중국은 사드 배치에 반발하면서 한국을 소국 취급하며 길들이려 한다는 정서가 한국에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 뒤 중국 측 참가자 한 명이 다가오더니 “지금 한 말을 조금 다듬으면 상당수 중국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양국을 오가는 유학생이 이렇게 많은데 이들을 친중파·친한파로 만들려는 노력이 없다는 건 공공외교에 대한 접근이 잘못된 것”이라며 “중국과 여러 교류를 하는 우호단체만 한국에 수천 개나 되지만 장기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컨트롤타워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0년 류우익 당시 주중 대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안해 공공외교를 전담하는 반관반민 조직인 ‘차이나 소사이어티(China Society)’ 설립을 추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말로 넘어가면서 흐지부지됐다.

류 전 대사는 “중국은 장관급이 회장을 맡는 ‘인민대외우호협회’를 갖고 있는데, 우리 쪽 민간단체들은 개인적 인연을 활용하는 게 전부”라며 "중국은 그 창구를 통해 공공외교를 하고 싶어하는데 한국에 아예 파트너가 없어 아쉬워 했다”고 말했다. 올해 정부의 공공외교 예산은 1000만 달러(약 112억원)에 불과하다. 일본(4억 달러)의 40분의 1이다. 미국과 영국은 각각 10억 달러, 독일은 8억 달러를 공공외교에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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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교수, 김영수 서강대 교수,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남궁영 한국외대 교수,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영호 강원대 초빙 교수,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성원용 인천대 교수,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 총장·전 외교부 장관,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위성락 서울대 교수·전 주러 대사,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이규형 전 주러 대사,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이종화 고려대 교수,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 (가나다순, 이상 31명)

◆특별취재팀=최익재 팀장, 유지혜·박성훈·서재준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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