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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물린 1조는 대부분 충당금 쌓아…단위농협·신협은 4210억 회사채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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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채권단이 한진해운과의 협상에서 시종일관 강경한 태도를 보인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유사시 금융사와 투자자들의 예상 손실액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한진해운 주가 24% 하락, 거래 정지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진해운에 대한 금융사들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1조원 정도다. ‘물린 돈’이 22조원에 가까운 대우조선해양과 비교하면 훨씬 적은 액수다. 산업은행이 6660억원으로 가장 많고, KEB하나은행(890억원), NH농협은행(850억원), 우리은행(690억원), KB국민은행(530억원), 수출입은행(500억원), 부산은행(80억원)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이마저도 미리 충당금을 적립해 손실액을 대부분 반영한 상태다.

대출액이 가장 큰 산업은행은 한진해운 여신을 ‘추정손실’로 분류해 대출액의 100%를 충당금으로 쌓아뒀다. 최악의 경우 법원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을 부결하고 파산 선고를 내린다 해도 추가 피해는 없다. 충당금 적립은 향후 발생할 손실에 대비해 예상손실액을 미리 쌓아두는 것을 말한다.

은행은 여신의 건전성을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의 5단계로 분류하는데 뒤쪽으로 갈수록 부실채권으로 분류돼 미리 쌓아야 할 충당금의 비중이 커진다. 추정손실은 대출금의 100%, 회수의문은 대출금의 50~90%를 미리 쌓아야 한다. 농협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도 한진해운 여신을 ‘회수의문’으로 분류해 90~100%에 가까운 충당금을 이미 적립했다. 수출입은행의 한진해운 여신 500억원은 ‘정상’으로 분류돼 있지만 이는 대한항공이 보증한 영구사채라 유사시 대한항공이 전액 지급해야 한다. 주요 은행 중에서는 건전성 등급을 ‘고정’으로 분류해놓은 하나은행 정도만 어느 정도의 추가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이 은행 대출만 일으킨 건 아니다. 이 회사는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해 시중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발행한 회사채 잔액은 영구채를 제외하고도 지난 6월 말 현재 1조1891억원에 이른다. 이 중 공모 사채가 4210억원, 사모 사채가 7681억원 규모다. 한진해운이 파산하면 채권은 휴지조각이 된다. 법원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린다 해도 별 차이는 없다. 법정관리 신청과 동시에 모든 채권과 채무가 동결되기 때문에 채권자는 권리 행사가 불가능해진다.

우려되는 건 4210억원의 공모 사채다. 대부분 소규모 단위 농협과 신협이 보유하고 있어 상당한 피해가 우려된다. 단위 농협 등의 상호금융사들은 최근 들어 우량채권의 기준선인 AA급 아래의 회사채에 대거 투자했다. 은행과 저축은행 등에 밀려 자금을 굴릴 만한 곳을 찾지 못해 벌어진 현상이다. 대규모 금융사들과 달리 규모가 작은 지방 단위농협과 신협은 몇 억원의 투자액만 부실화해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회사채의 90%를 개인이 보유하고 있었던 동양그룹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은 없다”며 “단위 농협 등 상호금융사도 지난봄에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충격흡수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증시에서 한진해운 주가는 전날보다 24.16% 급락한 1240원까지 하락한 뒤 매매거래가 정지됐다. 한국거래소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설과 관련해 이 회사에 조회공시를 요구하면서 거래 정지조치를 취했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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