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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서 서로 돈 내려는 실랑이, 꼭 호신술 같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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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에서 왜 호신술이 발달했는지 아세요?” 지난 24일 만난 터키 인터넷 매체의 한국특파원 알파고 시나씨(28)는 이런 질문을 던진 뒤 1인 상황극을 선보였다. 호주머니에서 계속 뭔가를 꺼내려는 손을 다른 한 손으로 격렬히 막으며 이렇게 말했다. “형님, 이번엔 제가 낼게요.” “아우야, 넣어둬. 내가 할 거야.” 선후배 간에 식당에서 서로 대접하겠다며 벌이는 실랑이를 코믹하게 표현한 것이다. “상대방이 지갑 꺼내는 걸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모습이 마치 호신술 훈련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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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는 “연극은 이번이 첫 경험이지만 앞으로 공연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알파고는 다음달 2~3일 서울 대학로 소담소극장에서 스탠딩 코미디 ‘한국생활백서’를 공연한다. 12년째 한국에 살며 보고 느낀 점을 희극으로 풀어낸다. 연기는 물론 극본과 연출 모두 혼자 소화하는 원맨쇼다. 

터키 첫 한국 주재 특파원 알파고
내달 대학로서 코미디 원맨쇼 공연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 장단점 풍자”
12년째 머물며 한국 여성과 결혼도

“지난해 ‘터키 기자가 본 한국의 삶’을 주제로 강연한 적이 있는데, 청중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공연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좋은 점과 부정적인 면 등을 보면서 사람들이 웃고 또 뭔가 느꼈으면 했죠.”

하지만 공연장 대관부터 쉽지 않았다. 그는 “대학로의 소극장 수십 곳에 문의했지만 공연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며 “며칠간 돌아다닌 끝에 겨우 한 곳을 섭외했다”고 말했다. 그는 셀피(selfie·셀프 카메라)를 찍어 포스터를 제작했다. 

알파고는 “관객이 안 웃으면 ‘흑역사’가 될까봐 긴장된다”면서도 “‘설명이 안 되는 일은 개그로 접근한다’는 터키의 유명한 속담이 있다. 상대방을 웃게 만들면 자신의 생각이 잘 전달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터키 최초의 한국특파원이다. 터키 지한통신사의 한국특파원으로 2010년부터 6년간 일했고 최근엔 터키 인터넷 매체 하베르코레(haberkore.com)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터키 국민이 관심 많은 한국의 산업과 문화, 대북 관계 등을 주로 취재한다”고 했다.

알파고는 2004년 터키의 명문 과학고를 졸업한 뒤 KAIST 진학을 목표로 한국에 왔다. 먼저 한남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다 세계 각국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국제 관계에 눈을 떴다. 그래서 충남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외교학 석사를 땄다. 2014년엔 두 살 연상의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 “아내가 세 자매 중 맏딸이에요. 처음엔 처가의 반대가 있었는데 제가 ‘아잉~ 아버님~ 어머님~’하고 애교를 부리면서 거리를 좁혀갔어요. 지금은 예쁨 받는 맏사위죠.”  

세계 화폐 수집이 취미인 알파고는 최근 『화폐 인물로 만나는 시대의 도전자들,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헤이북스)도 펴냈다. 화폐 속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

“인공지능(AI) 알파고 덕분에 제 이름이 유명해졌잖아요.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저 알파고의 시대도 오겠죠? 하하.”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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