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하오5시부터 철야 농성에 들어갔던 서울대생 9백 여명은 23일 상오 농성을 풀고 11시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이동수군 위령제를 시지낸뒤 「국민대토론회」 준비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농성중 23일 하오1시에 열기로 한「개헌과 민족자주화를 의한 시국대토론회」 를 준비했다.
한편 서울대는 23일 상오 임시학장회의를 열고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도서관을 휴관하기로 결정하고 국민대토론회에 외부인사와 타교생들이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직원 40여명을 정후문에 배치, 출입자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했다.
또 관악경찰서는 학생들이 농성에 들어간 직후인 22일하오 7시쯤부터 정 후문과 학교 주변에 2백여명의 병력을 배치, 외부인의 교내출입을 막았으며 출입하는 학생들의 가방을 검사, 화염병과 유인물의 교내유입에 대비했다.
학교측은 22일하오 10시10분쯤 조용섭부총장을 비롯, 단과대 학장들과 본부간부 등 10여명이 학생대표를 만나 농성장을 학생회관으로 옮길 것을 종용했으나 거절당했으며 조부총장은 이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기물을 부수거나 과격한 행동을 삼갈 것을 당부했다.
학생들은 22일 「5월제」 의 마지막 행사인 「대동제」 를 마친 뒤 총학생회장 권한대행 황이위군 (22 인류4) 의 사회로 철야농성을 결의, 하오4시25분부터 도서관 간이식당옆 비상구를 통해 6층으로 올라가 책상과 걸상으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분신자살한 이동수군의 분향소를 마련한 뒤 농성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