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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안정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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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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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박 대통령의 판단이 옳을까.

북한 정권교체 발언은 역효과
‘붕괴’는 유용성이 없는 개념
개방경제와 중국 의존 때문에
북한은 금융 취약성에 노출돼

예전부터 많은 사람이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고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항상 틀렸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의 생존은 점점 더 중국에 달렸다.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은 잠재적으로 취약하다. 하지만 베이징은 평양에 압력을 넣으려는 의지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개적으로 북한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말하는 것은 역효과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정권교체를 말하면 북한의 김씨 왕조에 대한 중국의 지원이 오히려 확대될 것이다. 북한 정권이 생존할 가능성이 커진다.

북한의 정권교체는 어떻게 가능할까. 북한에 대한 논의에서 ‘붕괴(collapse)’라는 개념이 종종 사용된다. 하지만 붕괴는 그리 유용하지도 않은 데다 개념 자체가 별로 명료하지 않다. 일당지배 정권이 다스리는 북한은 시리아나 내전이 벌어진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약한 국가도 아니고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도 아니다. 북한이 리비아와 같은 방식으로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르헨티나·필리핀·폴란드·한국 등 사례들을 보면 밑으로부터 대중을 동원하려면 노조나 교회 같은 탄탄한 시민사회 조직이 필요하다. 북한에는 그런 조직이 없다. 동부유럽 국가들의 민주화는 사실 비정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일당 정권은 민주화되는 것이 아니라 군부통치로 바뀌거나 러시아 처럼 어느 정도 경쟁이 허용되는 권위주의 정치 형태로 바뀐다. 아시아의 경우 중국·베트남·라오스 같은 공산주의 정권은 놀라운 회복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북한 경제는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 또 북한의 고립이 정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저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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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북한의 대중(對中) 의존은 점차 심화됐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 북·중 무역이 북한의 전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90%에 가깝게 됐다. 대북제재는 북한의 해상운송, 국제금융 체제에 대한 접근, 불법·합법 상업 활동을 제약하거나 차단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하고, 북한의 해외 투자 노력은 실패했다. 단순히 제재 때문이 아니라 재산권 보장과 관련해 국제사회가 북한을 전혀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외교관들의 탈북 물결이 우리가 볼 수 없는 깊은 내부 갈등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면 탈북 사태는 정권교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 탈북 물결은 북한의 경제적 고립을 반영한다. 북한 외교관들은 정권을 위해 외화벌이를 해야 하지만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들은 벌을 받게 된다. 본국으로 송환되거나 더 나쁜 처지에 빠질 수 있다.

사실상의 개혁과 시장화를 통해 북한은 점점 더 개방 경제로 바뀌고 있다. 외부의 상품과 돈에 의지하게 된 북한은 점차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나 개발도상국들이 80년대에 겪은 유형의 외환위기 가능성에 노출될 것이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핵 개발 야망을 품었던 이란 사례가 북한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위기의 전례가 된다. 2011년 이란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자 지하시장의 환율이 붕괴하고 인플레가 가속화됐다. 위기의 와중에서 이란이 미국과 비밀 협상에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 지하시장의 환율과 쌀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뭘까. 짧은 대답은 ‘중국’이다. 중국의 대북 제재가 엄밀하게 실시됐다면 북한은 이란이 겪은 문제들과 직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재 대상인 석탄을 포함해 북·중 무역은 전체적으로 끄떡없다. 중국과 북한 모두 북한의 취약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점진적 제재 강화와 북한에 대한 불신은 심각한 금융 상황을 촉발할 수 있다. 탈북자들이 자금을 꿰차고 탈출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

하지만 한·미 합동 군사훈련,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정권교체 발언은 중국과 북한을 더욱 밀착시킬 것이다. 사드는 전략적으로 타당하다. 북한 사람들의 자유를 희망하는 표현들도 타당하다. 하지만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미국과 한국은 중국을 끌어들이고 중국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한 외교가 실패한다면 한국·미국과 중국 사이를 떼어놓은 북한이 이기는 것이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나 사드는 북한 정권 행태의 결과다. 중국을 봉쇄하려는 음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 표명은 북한 정권 자체의 지나친 권위주의 행태의 산물이다.

만약 핵 개발과 관련된 북한의 행태가 온건하게 바뀐다면 한국과 미국의 사드 설치 일정에도 온건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의 권위주의 행태에 변화가 있다면 국제사회는 이를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간단한 사실들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상기시켜 줘야 한다. 박 대통령은 다음 G20 정상회의에서 다시 한번 시 주석에게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