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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50년간 사랑받은 '스타트렉' 내겐 '미친 도전'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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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함선 엔터프라이즈호에 최대 위기가 닥쳤다.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2009~)의 세 번째 편인 ‘스타트렉 비욘드’(원제 Star Trek Beyond, 8월 17일 개봉).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커크 함장(크리스 파인)과 대원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붙잡힌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긴박한 작전을 펼친다. 빈틈 없이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와 시원하고 화려한 액션은 이 시리즈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이번 편의 가장 큰 변화라면 ‘스타트렉:더 비기닝’(2009)과 ‘스타트렉 다크니스’(2013)를 연출했던 J J 에이브럼스 감독이 제작자로 물러났다는 것. 대신 대만계 미국인 감독이자 ‘분노의 질주’ 3~6편(2006~2013) 연출자로 이름난 저스틴 린(43)이 새롭게 메가폰을 잡았다. 전편의 부담을 떨쳐 내고 탄탄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 그가 궁금했다. 국내 개봉을 맞아 한국을 찾은 감독을 만났다. 7월 미국 개봉 당시 LA 인근 베벌리힐스에서 나눈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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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굉장히 에너지가 넘친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쏟아진 질문이 무척 다양해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타트렉 비욘드' 저스틴 린 감독

-J J 에이브럼스 감독에게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인디영화 준비 중일 때 갑작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는데 6개월 안에 모든 걸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3일간 고민하며 정말 ‘미친 짓’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도전해 보고 싶었다.”

-‘미친 짓’임에도 끌렸던 이유라면.
“영화감독으로서 내 여정을 돌아보면 난 한 번도 ‘비즈니스적’인 결정을 한 적이 없다. 늘 ‘감성적’인 선택을 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공들여 준비했던 인디영화를 포기해야 했고, 어떤 면에서는 커리어상 멀리 우회하는 길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1966년 TV 방영을 시작으로 수없이 변주됐다)는 어린 시절부터 나와 우리 가족의 일부분이었다. 우리는 작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오후 9시에 문을 닫고 10시에 온 가족이 저녁을 먹은 후 11시부터 다 같이 ‘스타트렉’을 보곤 했다. 당시 나는 늘 외로움을 느끼던 이민 가정의 꼬마였는데, ‘스타트렉’을 보며 꼭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라도 서로 믿고 의지하며 경험을 나누면 얼마든지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전작들과 ‘다르면서도 같게’ 만들기 위해 둔 ‘스타트렉’만의 핵심 가치 또한 거기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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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가족애에 가까운 캐릭터 간의 우정을 핵심으로 삼았다. 이 시리즈가 50여 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서로 다른 인물이 하나가 된다는 설정 덕분이었으니까. 천차만별의 캐릭터들이 새로운 도전에 용감히 맞서 싸우며 더욱 끈끈해진다는 ‘스타트렉의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상황을 더욱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캐릭터 간 관계에 특히 신경 쓴 인상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닥터 본즈(칼 어번)다. 재미있고 충직한 삼촌이랄까(웃음). 그와 스코티(사이먼 페그)의 관계를 그리는 일이 가장 재미있었다. 유일한 아시아인 술루(존 조)는 어렸을 적 내게 큰 영향을 끼친 캐릭터다. 16년 동안 우정을 이어 온 존 조와 함께해 무척 기뻤다. 대원들이 낯선 종족인 제이라(소피아 부텔라)와 우정을 쌓아 가는 과정도 중요하게 다뤘다. 낯선 이들과도 연대하는 일이, 지금 이 세계에 가장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양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할리우드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돌아보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인종의 배우를 캐스팅했지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면 정말 감사하다. 아직도 영화사들은 캐릭터의 인종이 명시돼 있지 않은 경우, 백인을 캐스팅하는 걸 당연히 여긴다. 사실 나는 다양성을 의식해 일부러 여러 인종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관행에는 반대한다. 그저 모두에게 문을 열어 놓은 뒤, 그 역할에 제일 잘 맞는 배우와 함께하고 싶다.”


-화려한 비주얼도 중요한 부분이었을 텐데. 워낙 감각적인 영상미로 정평 나 있지만, 전편에 대한 부담이 꽤 컸겠다.

“처음엔 도저히 새롭게 접근할 방법이 없어 힘들었다. 어지간히 멋진 앵글은 이미 전작들이 다 갖다 썼더라(웃음). 대신 나는 최대한 ‘인간다움’을 강조할 수 있는 비주얼을 구현하려 애썼다. 세계 최고의 CG(컴퓨터 그래픽) 기술력이 동원되고, 크레인 위에 또 크레인을 올려 찍을 만큼 엄청난 규모였지만, 인물이 스케일 속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인간애를 담아낼 수 있을까 싶어, 촬영팀과 CG팀을 많이 괴롭혔다.”


-커크가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신, 비스티 보이즈의 노래가 흘러나오며 적을 부수는 신이 인상적이다. ‘스타트렉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빛나는 두 장면은 어떻게 탄생했나.

“디지털 시대에 옛날 유행을 끼워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비스티 보이즈의 음악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오토바이 장면은 인디영화적인 요소를 살리고 싶어 넣었다. 오리지널 시리즈는 세트장이 한 곳뿐이었음에도 항상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줬다. 그런 정신을 이번에 담고 싶었던 것 같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J J 에이브럼스와의 작업은 어땠나.
“에이브럼스는 과감하게 ‘당신만의 작품을 만들라’고 격려해 줬다. 한결같이 나를 믿고 지지해 주더라. 감독이 된 이후, 다른 촬영 현장에 가 보거나 남이 연출하는 스타일을 엿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 그와 함께 일을 하니 다시 영화학과 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촬영한 영상을 보며 둘이서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눈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이토록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안톤 옐친(체코프 역)에 대한 기억이라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옐친은 좋은 배우였을 뿐 아니라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옐친을 추모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그가 등장하는 모든 촬영분을 다 돌려 봤다. 그 속에 너무나 많은 추억이 담겨 있었다. 옐친은 촬영이 없는 날도, 열여덟 시간 내내 일해야 하는 날도 늘 웃으며 좋은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

-참, 친아들이 잠깐 영화에 등장한다고.
“영화 초반 잠시 등장하는 초록 얼굴의 아시안 소년이 일곱 살 난 내 아들이다. 한동안 늘 현장에 데리고 다녔는데, 이번엔 자기가 먼저 출연하고 싶다고 하더라.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아들의 소원을 들어줬다(웃음).”


-‘스타트렉’ 시리즈는 언제까지, 어떻게 계속될까.

“인류애를 다룬 작품이니…, 아마도 영원히?”

임주리 기자, 베벌리힐스=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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