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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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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 달러화가치가 크게 떨어졌음에도 당분간 큰 폭의 무역적자는 줄 것 같지 않다. 엄청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로 곤경에 빠진 미국이 G5선진국의 경제정책협조라는 이름을 빌어 일본시장의 개방과 엔화 평가절상의 강력한 압력을 가한 결과로 금년들어 엔화시세가 급등하는 것이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일본의 막강한 경제력과 높은 산업생산성 때문인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19세기이후 세계경제의 큰 흐름을 보면 영국을 비롯한 유럽제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미국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태평양권으로 경제활력이 옮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 국민경제가 한창번성 할때는 당시를 지배하던 시대사상과 그 나라의 경제정신이 일치하여 잘 조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오늘날 일본산업의 높은 생산성을 이와 같은 경제정신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고 싶다. 여기서 경제정신을 그 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 경제정책의 사상적 배경을 뜻한다고 한다면, 우선 서구경제를 이끌어온 경제정신은 기독교의 자유평등사상과 합리적 과학정신이라고 할 수 있고, 미국경제를 주도해온 경제정신은 서구의 경제사상을 배경으로 한 뉴 프런티어적 개척정신 속에서 프래그머티즘의 실용성을 강조한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서양의 합리주의를 흡수하면서도 유교 문화적 기반 위에 의리와 단합을 중시하는 사무라이(무사)정신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유평등과 합리주의가 존중되던 시대에는 서구경제의 자본주의가 꽃을 피웠고, 창의와 과학적 실용주의가 중시되던 때에는 미국의 거인경제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갈등과 불안과 불학실성이 세계적으로 만연하고 미시적 첨단기술이 풍미하는 오늘날에는 단결과 조화를 강조하고 경부단소에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일본의 경제정신이 더욱 각광을 받게되는 것이 아닐까. 세계는 지금 온통 일본의 경제기적에 찬사를 보내고 그들의 경영전략과 경제정책을 모방하려고 기를 쓴다.
그러나 그들이 성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역사·전통·문화를 밑에 깔고 생성되어온 경제정신을 제대로 이해·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경제정신의 실체를 집약한다면, 서양의 선진기술을 모방하면서도 일본혼으로 소화한 양재화혼의 자세, 또 자유로운 경쟁을 존중하면서도 전체를 위해서는 개인을 희생하는 무사도적 집단주의정신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 경제도 이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환점에 서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경제를 더욱 발전·확산시킬 수 있는 경제정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시대를 거슬러 보면 조선조에는 유교정신에 따라 사회위계질서를 사·농·공·상의 엄격한 계급적 관료주의에 의한 폐쇄적 사회 속에서 경제가 발전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했다.
해방과 더불어 서양의 자본주의경제가 자유평등사상과 함께 도입되었지만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물질만능주의 때문에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가치질서가 정립될 겨를도 없이 가치관의 혼돈을 초래하고 말았다. 다만 60년대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실시되면서 그때까지의 체념적 숙명론을 벗어나 「하면 된다」는 경제적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긍정적인 가치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열의만 앞섰지 성실과 창의가 미흡하여 미시적 경쟁에는 크게 뒤진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 경제도 새로운 경제정신이 확립되지 않고는 지금의 전환기적 고비를 넘을 수 없음은 자명하다. 나는 성실과 조화의 정신을 우리의 경제정신으로 가꿀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여기서 조화의 경제정신은 수평적 조화와 수직적 조화를 포함한다.
수평적 조화란 지금의 우리 경제발전단계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정치·사회적 발전 없이는 새로운 경제진전이 있을 수 없고, 경제 내에서도 부문간·계층간의 조화있고 균형적인 발전 없이는 탈중진국이 어렵다는 뜻이며, 또 역으로 계층간의 고른 소득분배를 통해 중산층이 확대되지 않고는 정치발전도 사회안정도 이룰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기에 수평적 조화의 경제정신에는 경제목표나 성과 못지 않게 정책수단과 과정이 존중되어야 하고 진정한 자본주의의 경제도덕성이 중시되어야 한다. 한편 어제와 오늘을 잇는 역사적·문화적·전통적 바탕 위에서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는 조화가 수직적 조화다. 서글프게도 우리는 근세에 들어 조상이나 고유의 것을 경시하고 남의 것을 지나치게 숭상하는 경제적 사대주의가 범람함을 본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은 개방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외국의 선진기술을 수입하고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혼과 역사적 유산이 일체가 될 때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기에 지금과 같이 어려운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상황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강조해야할 정신적 지주와 자세는 너와 나의 수평적 조화와 함께 어제와 오늘의 수직적 조화를 우리 국민적 정신으로 확고하게 재정립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김중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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