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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알면서도 당하는 ‘늪지형 위기’ 경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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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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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

‘늪지형 위기’란 낭떠러지형 위기(1997년 외환위기)와 달리 뻔히 알면서도 당하는 위기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나 유럽의 재정위기가 여기에 속한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에 늪지형 위기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다. 무엇이 우리 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가.

먼저 고령화 현상이다. 도시의 인프라 투자가 빠르게 편리성 위주로 바뀌고 있고, 젊은이들은 창업보다 취업을 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기준 고령화가 가장 빠른 나라, 경제예측학자 해리 덴트의 경고처럼 2018년이면 인구절벽(생산인구 감소로 소비가 하강하는 것)이 찾아오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둘째, 반월의 PCB 제조기업, 울산·경남·목포의 중소 조선사, 하남공단의 전자 협력기업 등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매출하락과 회생절차, 구조조정 등이 진행 중이다. 고성장 시대엔 대기업이 성장을 주도하고 중소기업들은 덩달아 성장이 가능했지만 저성장 국면에서는 더 이상 협력관계가 지속할 수 없으며 각자도생해야 한다.

셋째는 돈맥경화 현상이다. 아무리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아 물가도 소비도 제자리 걸음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말 우리나라 통화유통속도는 0.71배로 2006년 0.9배에서 지속 하락 중이다. 대신 지난 7월 인천공항은 사상 처음으로 하루 항공기 운항횟수가 1000회를 돌파했다. 국내에서 열심히 저축해 해외에서 소비하는 구조다.

넷째, 가계대출의 증가다. 가계대출은 저금리시대에는 질보다 양이 문제다. 지난해 말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7.2%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가계부채의 임계치 75%를 약간 초과하고 있다. 금리인하로 인한 가계대출 증가는 부동산시장의 과열을 불러오고, 이는 다시 서비스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럴을 비웃는 스톡홀름 신드롬(인질범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비합리적인 현상)의 확산이다. 나쁜 남자를 좋아하고, 성형이 자연스럽고, 신상이 털려야 유명해진다. 정직하면 손해 보고, 모범을 보이면 따돌림을 받는다. 비정상이 뉴노멀을 가장하고 사회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는 아픈 곳만 진단해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아픈 곳도 많지만 피로감이 누적된 만성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기업, 매출, 순위 중심의 과시형 경제구조를 중소기업 중심의 실속형 경제구조로 혁신해야 한다. 대기업은 국내에서는 빚진 아들이지만 해외에서는 잘난 아들 아닌가? 그들이 해외에서 맘껏 잘 나가도록 우리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으로 대우하면 그만이다. 저성장 시대에 중요한 건 고용과 기술, 스피드이며 우리가 직면한 고령화 문제, 산업기반 회복, 소비구조 개선 등은 중소기업만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더 이상 늪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리를 놓든가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단언컨대 미래는 중소기업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고대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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