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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성과연봉제, 공공부문 개혁 위한 필수 S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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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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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학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조총(鳥銃), 그게 쏜다고 다 맞는답니까?” 1592년 임진년. 파죽지세의 기세로 한양을 향하는 왜군을 막아내기 위해 신립 장군이 문경으로 떠난다. 유성룡은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의 위력을 경고하지만 기마전의 명수 신립은 개의치 않는다.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기병을 이끌고 연전연승했던 신립은 천혜의 요새 문경새재를 포기하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다. 기병으로 조총을 제압하겠다는 자신감과 달리 조선군은 탄금대에서 전멸하고 한양이 함락된다. 임진왜란 초기의 슬픈 역사다.

많은 이들의 짐작과 달리 16세기 말 조선과 일본에서 조총은 새로운 무기가 아니었다. 포르투갈 상인 등에 의해 수십 년 전에 소개되었지만, 조총의 느린 발사속도 때문에 조선의 주력은 여전히 기병이었다. 하지만 전국시대를 거친 일본은 달랐다. 느린 발사속도를 극복하기 위해 부대를 3열로 나눠 장전·조준·발사를 순환하는 ‘연속사격술’이 보편화됐고, 이 차이는 조선을 치명적인 위기로 몰아넣는다. 값비싼 ‘하드웨어’ 기병에 집착한 조선은 연속사격술 이라는 ‘소프트웨어’에 완패했던 셈이다.

우람한 ‘하드웨어’보다 효율적인 ‘소프트웨어’가 승패를 가르는 상황은 공공부문 개혁을 모색하는 오늘날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취업난 속에 안정된 직장을 찾는 구직자들로 공공기관의 입사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인재들만으로 높은 경영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연공서열로 직위가 결정되고, 근무 기간으로 임금이 결정되는 현재의 공공기관 운영방식은 우수한 인재들의 ‘분발’을 끌어내기 어렵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더 나은 보상을 주고, 조금 부족한 사람에겐 역량개발의 기회와 자극을 주는 성과연봉제는 공공기관 개혁의 필수 ‘소프트웨어’다.

성과연봉제 도입은 공공서비스의 패러다임 변화와도 궤를 같이한다. 과거 막대한 재정투입을 통해 독점서비스를 제공하던 공공기관들도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수요자 중심에서 고민하고 서비스의 질로 승부하는 공공기관이 늘어나야 한다. 공정한 평가제도가 뒷받침 되면 ‘성과연봉제’는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건전한 내부경쟁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무역보험공사는 지난 4월 노조원 72%의 지지로 정책금융기관 최초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합의했다. 협의에 의한 과제설정, 중간평가와 모니터링, 평가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등 ‘퇴출이 아닌 역량개발’에 초점을 맞춘 평가제도가 구성원 모두에게 공감을 준 덕분이었다. 사장과 직원들이 격의 없이 만나 소통하는 ‘힐링토크’를 통해 ‘성과연봉제는 해고용’라는 오해를 풀어나갔다. 성과연봉제를 위한 ‘개인별 성과평가’도 7월부터 본격 도입해 실시 중이다.

혁신하지 않는 조직에 위기는 필연이 아닐까. 국민은 ‘건전한 내부 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공공부문 성과주의 확산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국민에게 성과로서 신뢰받는 공공부문의 선도적 변화가 민간부문과 경제 전체로 파급되어 뿌리내리길 기대해 본다.

김영학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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