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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연 4조 쓰는 정부출연 연구소 재정립 고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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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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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미래 예측은 쉽지 않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창조는 4차 산업혁명의 세계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다. 과학기술이야말로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이고 국리민복과 부국강병을 위한 핵심적인 도구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 추격형 모델에서 창조형으로 바뀌고 있다. 5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서 과학기술입국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KIST라는 정부 출연연구소를 설립했다. 우수연구 인력 확보를 위해 출연연구소를 설립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명품인 정부 출연연구소 제도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있는 공공연구기관의 운영형태다. 원로과학자들은 연구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했던 박 대통령 재임시절을 황금시절로 기억한다. 정권마다 과학기술이 국정과제의 단골메뉴로 등장했지만, 현장에서는 찬밥신세라는 원로들의 한탄도 있다.

역대 모든 정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고 경쟁력 향상을 위해 과학기술을 진흥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지향하는 목표와 정책은 바뀌었다. 국가 성장동력 개발, 지식기반산업 육성, 중소기업 지원, 녹색성장, 창조경제와 같이 정책도 바뀌고 목표도 달라졌다. 또한 정권마다 과학기술분야를 전담하는 정부부처도 바뀌었고 출연연구소를 관할하는 지배 체제도 변해왔다. 변화의 시기마다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정책의 일관성 부재를 지적했고, 정부 부처마다 입장이 다른 경우 통합조정능력,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고려한 현장위주의 정책을 주문해왔다.

현존하는 24개 정부 출연연구소는 연간 4조원이 넘는 연구개발비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구소의 위상과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정권마다 달라지는, 일관성 없는 정책의 부작용으로 인해 공공기관의 폐해가 누적돼 이제는 시장의 요구를 따르기도, 국가정책에 상응하는 효율성을 내기도 힘겹다. 이러다보니 출연연구소 존립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도 존재한다. 연구현장에서는 정부의 간섭과 규제 때문에 효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고, 정부는 연구예산은 증가했는데 기대만큼 국가경제에 연구개발 성과로서 보답하지 못한다는 불만이다.

과학기술은 불확실한 미래에 창조로 가는 안내판이다.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급속히 발전시켜 국가 경쟁력 향상에 현저한 기여를 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다. 기술의 진보는 우연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과학기술 진흥을 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정책의 연속성과 강력한 실행력이 있는 과학기술정책을 대통령이 직접 만들 필요가 있다. 50년이 지난 출연연구소는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R&D 혁신을 위해선 부처마다 산재해 있는 정책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정부의 강력한 기능과 함께, 자율과 책임이 반영되어야 한다.

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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