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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한국 기업, 연해주를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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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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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논설위원

열흘 전 중앙일보 평화오디세이 일행으로 연해주를 둘러봤다.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의 땅이자 일제시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조선인의 생활터전이던 곳이다. 분단 이후로는 북한에 가로막히고 소련 땅이 된 지 오래돼 아득하게만 여겨졌던 곳이지만 비행기에 몸을 싣자 2시간45분 만에 땅을 밟았다. 심정적으로 가까운 미국이나 유럽이 10시간 넘게 걸리는 데 비하면 한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 할 만했다. 이곳에서도 ‘파워 코리아’를 목격한 건 의외였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매장과 건물에 걸린 LG 에어컨, 도로를 달리는 한국 승용차를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K뷰티의 위력에도 놀랐다. 좁은 국내시장을 경쟁적으로 뛰쳐나간 듯 미샤와 잇츠스킨을 비롯해 국산 화장품의 단독 매장이 블라디보스토크 중심부에 당당하게 문을 열고 있었다. 이 지역 최고급 현대호텔은 지역의 랜드마크였다. 현대중공업은 차로 달려도 지평선만 보이는 2만㏊ 땅에 콩과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다. 안에서는 작아 보이는 한국의 파워를 기업을 통해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시간이 됐다.

이렇게 작지만 강력한 매력을 가진 한국에 러시아가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러시아는 한때 브릭스(BRICS)의 간판 국가로 꼽힐 만큼 강력한 성장력이 기대되던 나라였다. 하지만 세계 경제 침체와 유가 하락으로 지금은 힘이 빠져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게 되면서 궁지에 몰려 있다. 내부적으로는 연해주 저개발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남한 땅의 1.6배에 달하는 연해주에 중국인이 계속 밀려들면서 이 땅이 중국에 좌우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경제 활성화와 안보 차원에서 극동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에 연해주는 기회의 땅이다. 자본과 기술을 모두 갖고 있지만 국내에선 옴짝달싹하지 못한 지 오래됐다. 인건비가 높고, 입지·환경 규제가 심해 공장에 생산라인 하나 추가하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은 신천지로 바뀌고 있는 극동에서 블루오션을 찾을 수 있다.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완화하고 브렉시트가 시동을 건 보호무역주의 충격파를 누그러뜨리는 완충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은 밖으로 나갔을 때 언제나 기회를 잡고 성장했다. SK그룹은 지난해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올렸다. 국내 다른 기업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관세 장벽을 넘기 위해 해외에 공장을 짓는 것도 오래됐지만 특정지역에 대한 편중과 보호무역 바람은 국내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철강·화학제품에 대한 관세폭탄은 현실화했고 다음에는 어느 제품이 보호무역의 먹잇감이 될지 모른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그 기회를 연해주에서 품어보길 권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선택과 지원이 필요하다.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막후협상을 통해 러시아와 수교하면서 외교적으로 채널을 만들었다면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극동에 한국 기업의 진출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 한·러 양국은 나진-하산 공동 개발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때문에 유야무야됐다. 그럼에도 연해주는 국내 기업의 투자 영토 확대는 물론 북한을 밖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변함이 없다.

배고픈 한국 기업은 이곳을 극동의 생산기지로 구축할 가치가 있다. 이미 중국·일본은 북극항로 개통 효과까지 노리고 연해주 선점에 나서 러시아와 물밑협상 경쟁을 벌인 지 오래다. 연해주에선 러시아횡단철도(TSR)를 통해 소련 위성국가와 유럽으로 제품을 빠르게 수송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의 비즈니스 영토를 잠재적 성장력이 큰 유라시아로 확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해주는 동토의 땅이 아니란 것도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다. 짧다고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의 여름은 더웠다. 아무르 강변의 숲은 울창하고 풍경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래서 러시아어를 덤으로 배웠다. 크라시바야(красивая·아름답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