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험대 오른 민정의 「매국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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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은 신민당의 마산대회가 무난히 끝남에 따라 소강국면을 회복, 여야간 대화분위기가 마련되고 있는 정국을 어떻게 주도해야 당의 장외개헌투정을 장내로 유도할 지 고심하고 있다.
인천사태로 격화됐던 여야간 긴장분위기가 마산대회의 평온으로 진정 기미를 찾아 서로간에 협상할 여건이 마련됐다고 민정당은 판단, 대야접촉을 적극화시킬 방침이나 신민당이 소극적 자세를 보여 현재로서는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민정당측은 기본적으로 본격 대화는 12일 방미에 나선 이민우 신민당총재의 귀국 후인 5월 말게 이후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민정당측은 그때 가서 전두환 대통령과 이 총재간 회동, 그리고 노태우 대표위원과 김영삼 신민당고문과의 회담을 성사시키는 한편 야당의 장내진입의 여건마련을 위해 이 총재 부재중 여야총무 접촉의 활성화는 물론 각종 통로를 통한 대야접촉에 진력한다는 것이다.
민정당측은 마산대회가 평온하게 끝남으로써 신민당이 자체의 판단으로 개헌투쟁의 장을 국회로 전환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됐다고 일단 판단하는 것 같다. 인천사태의 후유증, 「슐츠」미 국무장관의 방한 중 발언 등으로 여러측면에서 몰리고 있던 신민당측이 마산대회마저 인천사태의 재판으로 끝났다면 양내 진입에 진통을 한층 더 겪게되고 이에 대응해야할 여당자세의 정립 또한 간단치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따라서 평온리에 끝난 마산대회로 모처럼 조성된 정국의 소강국면에서 민정당이 어떤 정치력을 발휘해 야당측을 양 내로 이끌지가 앞으로 정국동향의 초점이 된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 중 개헌용의표명과 함께 정국주도를 자임한 민정당으로서는 이 과제를 다뤄 나가는 과정에서 정국 주도의 능력과 여권 안에서의 당의 비중을 실감 있게 보여줄 일종의 시험대에 섰다고도 볼 수 있다.
민정당이 말하는 「정국주도」는 크게 세 갈래 즉, 행정부와 권력주변 그리고 야당을 상대한 차원에서 주도적 위치를 확보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권력이 어느쪽에 가고 어떻게 행사되느냐의 문제에 귀착되기 때문에 권력의 분화·이양을 앞으로 어떻게 슬기롭고 균형있게 해 나갈 수 있느냐는 여권체질로서는 지난 사와 마주치게 된다.
당 고위층은 최근 당이 전면에서 모든 일을 주도하라고 격려, 당의 위치를 격상시켰다고 한다. 이같은 배려는 다음 집권과 관련한 일종의 이양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관측도 낳고 있다.
그런 결정의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집권후반기의 외기적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노력이 얼마전까지도 대체로 당이 소외된 행정적 대응이었는데 신축성 없는 이런 강경대응조치가 위기상황을 가열화시켜 왔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이로 말미암아 정권재생산모체로서의 여당기반만 약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또 여권이 종국적으로 믿을 곳은 어느 정권에나 충성하게 마련인 관료집단도 아니며 권력주변도 한계가 있고 따라서 국민의 기반 위에 설 수밖에 없는 민정당이라는 현실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게됐다는 점이다
민정당이 힘을 갖고 정치를 주도함으로써 집권말기에 나타날 수 있는 권력의 누수현상에 대한 견제도 현실적으로 고려됐음직하다.
이런 맥락에서 민정당의 주도권확보는 당정관계에서나 대야관계에서 당 입장을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따라서 「차기」를 대비하는 포석의 일단으로 보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 대표위원이 진실로 어려운 시험대에 섰다는 관측이 나도는 한 까닭이다.
때문에 당 주도가 어느 선까지 미치느냐는 것이 핵심관심사일 수밖에 없는데 정세은 없지만 관계자들은 △대야정국주도 △당 인사재량 △정책결정주도 등을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수뇌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주도실적」을 내놓지 못해 당내는 물론, 야권마저 민정당과의 양내 협상에 회의를 버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야당측은 아직 정국주도를 내세우는 민정당의 힘이 가시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을 관망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노 대표-김영삼씨간의 이른바 실세대화도 노 대표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 「힘」을 보이는가가 주요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최대관심사는 일단 당정인사쇄신에 쏠려있다. 많은 의원들은 4·30청와대회동으로 지금까지 밀리기만 하던 대야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는데 이를 한층 지속·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당정간에 폭넓은 인사쇄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있다.
인사재량권의 발휘야말로 당 주도 논의 명실상부한 구현이며 이를 통해 당정관계는 물론, 야측이 여측을 보는 시각과 자세가 달라질 것이라는 논리다.
그럼에도 수뇌부는 당내 헌특위원 인선조차 전권을 발휘 못해 『당 주도가 구두 선이 아니냐』는 당내 불만을 낳게 했다.
인사쇄신론에 대해 노 대표는 지난 8일 『자꾸 바꾼다고 해서 좋은 게 뭐 있느냐. 잘못한 게 있다면 개선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면 될 것』이라고 해명하는 한편 당내 결속을 강조했다.
노 대표의 이 말은 여권내 분위기가 아직 개편의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과 개편을 조기에 단행할 경우 예상되는 현실적 역풍이나 부작용, 특히 집권말기에 드러나는 권력의 누수현상 등을 염두에 둔 고층을 토로한 것일 터이지만 인사쇄신을 바라는 당내여론과는 배치되고 있다.
이것은 또 행정부와 야당이 여당의 정국주도론을 재는 데도 마이너스작용을 할 것이 틀림없다.
당정관계에서는 최근 민정당이 다소 주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정부내 최종결정까지 났던 연탄값 인상안을 놓고 노 대표가 최근 서민편익을 위해 재조정을 강력히 종용, 정부가 재검토했던 실례도 있다. 이같은 형태는 과거 같으면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을 일이었으나 당 주도선언 이후 나타난 긍정적 현상이다. 많은 의원들은 당정관계에서 당이 명실상부한 주도를 할 수 있자면 의원들의 다수 입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 수뇌부는 인사쇄신 등의 문제점은 점진적으로 풀어나가되 개헌문제에 적극자세로 임해 개헌에 대한 여당측 진의를 야측에 전달하는 한편 대야막후접촉을 통해 정치의 주체가 민정당임을 이해시킨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민정당은 또 어떤 사태가 발생할 때 신축성 없는 법률적·행정적 대응보다는 유연한 정치적 대응으로 문제의 확산을 막는 한편 대야신뢰를 쌓는다는 원칙도 세우고 있다.
민정당 수뇌부는 이달말께 실현가능성이 있는 여야고위회동을 통해 야당측도 여권내부의 변화를 실감해 본격협상에 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야측이 달라진 민정당비중을 인정한 바탕 위에 협상이 이뤄지고 당정의 인사 개편 등에서 다소 시간은 걸릴지라도 당 주도의 실적을 쌓아나가야 민정당의 정국주도는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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