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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철회’ 머리띠 푼 성주군수…김천엔 반대 현수막 400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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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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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곤 성주군수(가운데)가 22일 성주군청에서 사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김 군수는 “성산포대가 아닌 제3의 장소로 추진해 성주군을 하루빨리 원상복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주=프리랜서 공정식]

22일 오전 10시10분 경북 성주군청 1층 대강당.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반대를 외치며 삭발했던 김항곤 성주군수가 ‘사드 배치 철회’라고 쓰인 머리띠를 벗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주군수 “제3후보지 검토” 요청
주민 상당수 “정부 손 내밀 때 잡아야”
낙점 유력 성주CC에 인접한 김천
주민들 반대 성명·집회 잇따라
지난달 배치 결정 때 성주와 비슷

김 군수는 담담한 목소리로 “국방부는 성산포대를 제외한 제3의 적합한 장소를 사드 배치 지역으로 결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방부에 제3후보지 검토를 요청하는 형식으로 군수가 성주군에 사드 배치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순간이었다. 당초 오전 10시에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군민 50여 명이 군수실 앞을 막아서면서 늦어졌다. 그러나 사드 배치 수용이라는 대세를 막지는 못했다.

앞서 21일 성주 사드배치철회투쟁위원회는 33명의 간부가 제3후보지 요청 문제를 놓고 투표를 벌여 찬성 23명, 반대 1명, 기권 9명으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성산포대 대신 유력하게 거론되는 제3후보지는 성주군 초전면의 골프장인 롯데스카이힐 성주CC(이하 성주CC)다. 민·관·군 모두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성주CC는 해발 680m에 위치해 있다. 기존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산포대보다 300m 고지가 높다. 성주CC 일대는 산 정상 부근이지만 경사 없이 전체적으로 평지다. 성산포대 면적(11만6584㎡)보다 공간도 넓다. 롯데가 보유한 성주CC 면적은 성산포대보다 16배 이상 넓은 178만㎡다. 이 중 96만㎡가 골프장이고 나머지 82만㎡는 임야다. 군사적 위치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로가 잘 포장돼 있고 주변에 민가도 드물다. 사드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 유해 논란도 성산포대보다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 주민 밀집 지역과 떨어진 외딴 곳이어서 성주군의 행정적 관리 부담도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강경 반대파가 있지만 대다수 성주군민은 제3후보지 검토 요청을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성주읍에서 만난 30대 주부는 “한 달 이상 사드 반대 목소리를 전한 만큼 국방부가 군민들의 피해가 없는 곳에 사드를 배치할 것으로 믿는다. 적절한 시기에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낸 것 같다”고 말했다. 성산리에 사는 50대 주민은 “어차피 들어올 거라면 정부가 손을 내밀 때 잡는 게 맞다고 본다. 관광객도 줄었고 상권도 바닥 아니냐”고 말했다. 반대 목소리도 아직 있다. 40대 주민은 “제3후보지 요청이 군민 전체 입장은 절대 아니다. 성주 어디에도 사드 배치는 안 될 일”이라고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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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시 남면 부상리 마을에 22일 사드 배치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곳 부상리 마을은 사드 배치 제3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롯데스카이힐 성주CC와 직선 거리로 4㎞가량 떨어져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성주CC는 북서쪽으로 김천시 농소면·남면(주민 2100여 명 거주)과 1~5㎞ 떨어져 있다. 교통안전공단 등 10여 개 정부기관이 들어선 김천시 율곡동 혁신도시(주민 1만3700여 명 거주)와는 7㎞ 떨어져 있다. 김천시 측은 “성주군 제3후보지 사드 배치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22일 오후에 찾아간 김천시 대신동. 국방부의 제3후보지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도심 곳곳에 ‘사드 배치 김천시민 다 죽인다’ ‘사드로는 북한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등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지난달 초 사드 문제가 불거진 후 성주를 처음 찾았을 때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구호는 거의 같고 지명만 성주가 김천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김천시에 따르면 김천시 15개 면, 7동에 모두 400여 개의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김천에는 이날 농소면·남면, 혁신도시 주민들을 중심으로 ‘김천 사드배치반대투쟁위원회(이하 김천 투쟁위)’가 꾸려졌다. 공동위원장 5명도 뽑았다. 김천 시민들은 22일 오후 7시부터 농소면사무소 마당에서 성주CC 사드 배치 이야기가 없어질 때까지 촛불집회를 계속 이어 가겠다고 했다. 김천시와 시의회도 22일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화물연대 등 10여 개 김천 지역 시민단체·노조도 투쟁위에 동참했다. 24일에는 1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궐기대회를 열 계획이다.

위현복(55·농소면) 투쟁위 공동위원장은 “사드 레이더로부터 5.5㎞ 이내에는 벌도 못 자란다고 하지 않느냐. 자두와 포도값 하락, 건강 피해 등 이래저래 불안하다”며 “눈앞에 보이는 산에 사드가 온다는데 반대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성주·김천=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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