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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제의 부분실시-민주주의 토착화의 계기 되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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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실시시기는 확정되었으나 내용을 놓고 논란이 거듭되어온 지방자치제에 대한 정부의 복안이 밝혀졌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 등 4개 직할시 및 9개 도 등 전국 14개 시·도에 지방의회를 구성키로 하는 한편 이들 지방의회 선거에 정당의 참여를 허용한다는 원칙도 정해졌다.
시·도 지사는 당분간 현행임명제로 하고 시·군 단위의 실시여부는 추후 검토키로 하는 등 미진한 점이 없지 않지만 지자제가 정치발전의 선행요건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큰 진전이다.
더우기「4·30제의」로 막혔던 정국이 숨통을 틀 기미를 보이고 있는 이 시점이라서 지자제에 대한 단안은 한층 그 의미가 돋보인다.
흔히들 52년부터 61년까지 실시되었던 우리의 지자제는 「실패」였다고 들 말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표현은 적절치가 않다. 5·16후 능률의 극대화란 명분에 의해 작위적으로 매도 된 끝에 중단되었다고 해야 옳다.
물론 지방자치의 전통이 없는 이 땅에 불쑥 색다른 제도가 도입되어 갖가지 폐단과 부작용이 생겼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말썽이 많기 때문에 중단시킬 만큼 실패한 제도라면 그 말은 의회주의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지방자치단체 또는 지방의회의 문제 못지 않거나 비슷한 문제들이 국회의 경우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자제가 의회제도와 함께 민주주의의 양 수레바퀴임은 누구나 안다. 그 중의 하나가 이유야 어떻든 제 기능을 못했다면 민주주의는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동안의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가 경제성장을 이룩하는데 기여한 측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지자제의 중단에 의한 반사적인 성과라고 할 수는 없다. 뿐더러 경제적 성장에 따른 국민의 의식구조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 오히려 더 많은 문제점들을 파생시킨 주요원인이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현대정치의 중추기능을 해야할 정당의 상향식 조직구성을 저해했다는 점이다.
집권당이 행정조직으로 대체하는 하부구조를 야당의 경우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정당장치의 건전한 발전은 도저히 기약될 수 없었다.
지자제 실시 연구위가 발족한지 벌써 1년이 넘었건만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한 사정도 그런데 있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충북·제주에서 먼저 실시하고 차츰 확대 실시한다는 방안까지 나왔을까를 생각하면 정부·여당이 진실로 이 제도를 제대로 실시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이제 14개 시·도에서의 지방의회 구성에 그치지 않고 정당 참여 허용으로 나타났다. 아직 구성방법·선출방식 등 구체적인 부문에서 문제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지자제의 대강은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바람직한 방향에서 제시된 셈이 된다. 따라서 누구도 더 이상 정부의 「진의」를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제부터의 과제는 우리의 정치풍토와 국민의 의식수준에 걸 맞는 우리 나름의 지자제를 가꾸고 키워나가는 일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제도는 국민들의 민주정치의 훈련장으로서 꼭 필요한 것이다. 권리만 요구할 줄 알고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민주시민의 자격은 없다. 또한 민주주의는 국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그 결실을 맺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지자제의 성패는 시민스스로의 각성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각계는 어떤 방안이 우리의 토양에 맞는 것이며, 정치적인 선진화에 기여하는 것인지에 대한 활발한 의견 개진을 해야한다. 특히 야당은 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안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경새정국의 돌파구가 제시된 시점에서 지자제에 대한 윤곽이 밝혀진 것은 의미 심장하다. 아무쪼록 좋은 결론이 내러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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