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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후지는 필름도 화학도 화장품도 아닌 멀티플 회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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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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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리 시게타카 후지필름 회장. [사진 각 회사]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77) 후지필름 회장. 그는 1963년 후지필름에 입사해 2003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CEO를 맡자마자 회사의 방향타를 ‘코닥 타도’에서 ‘탈(脫) 필름 구조조정’으로 고쳐 잡았다. 그러곤 개혁을 밀어붙였다. 덕분에 필름 회사였던 후지필름은 다양한 사업군을 거느린 첨단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고모리 회장의 13년 반전 드라마
‘안 바뀌면 죽는다’ 위기의식 공유
CEO 맡자마자 ‘탈 필름’ 밀어붙여
규모 줄일 사업이라면 아예 접어

일본 재계에서 고모리 회장은 ‘기업 개혁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그는 최근 도쿄 본사 집무실에서 가진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일본 기업은 느려도 꿋꿋하게 혁신한다. 후지필름도 10년 넘게 혁신에 매달렸고, 구성원 전체가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한 덕분에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후지필름은 필름 회사인가.
“과거엔 그랬지만 이젠 일괄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다. 필름도, 화학 소재도, 화장품도, 디지털 기기 회사도 아닌 ‘멀티플’(multiple·복합적인) 회사다. 고객의 수요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려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후지필름뿐만 아니라 철강사든, 자동차 회사든 많은 기업이 이제 하나만 고집해선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혁신을 통해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은.
“첫째, 규모를 줄여야 할 사업이라면 아예 업을 접는 방식을 택했다. 디지털 시대에 밀린 필름 사업이 그것이었다. 둘째, 새로 도전해야 할 사업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 뒤 선택했고, 밀어붙였다. 우리가 잘해 왔고, 잘할 수 있는 건 필름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다면? 우리는 필름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살아남기로 했다. LCD 소재와 화장품, 디지털 기기 같은 대안이었다.”
혁신엔 구조조정이 따른다.
“직원의 아픔을 수반하고 돈도 필요한 일이다. 후지필름은 5000명을 줄였다. 그 과정에서 직접 나서 끊임없이 설득했다. 직원들에겐 충분한 퇴직금을 줬고,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는 판매점엔 영업권을 사들였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인건비는 계속 발생하지만 퇴직금은 일시적이다. 살아남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라 아깝지 않았다. 과장급 이상 전 직원을 상대로 왜 우리가 필름을 버려야 하는지, 왜 새로운 사업에 투자해야 하는지부터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우리의 구조조정은 피도 눈물도 없는 ‘드라이’(dry·메마른)한 구조조정은 아니었다.”
당신의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빨리 파악해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 이걸 바탕으로 예측하는 리더십이다. 이런 능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카리스마가 있어도 구성원들을 따라오게 할 수 없다.”
직장인의 꿈은 임원이라고 한다. 사원으로 출발해 회장에 오른 비결은 무엇인가.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조직원이다. 사원·과장·부장일 때 맡은 일을 확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멀리 보지 않고 단계별로 어떡하면 내가 맡은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경쟁사는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해결책을 찾아왔을 뿐이다. 회장도 마찬가지다. 다만 ‘무조건 이기면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페어플레이를 하려고 했다.”

도쿄=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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