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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업소 밀집 ‘선미촌’, 문화예술마을로 탈바꿈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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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북 전주의 대표적인 홍등가(紅燈街)인 선미촌이 문화 예술 거점으로 탈바꿈한다.

전주시, 건물 2채 매입하며 물꼬 터
지역 예술인 창작 공간으로 활용
‘포켓 공원’도 조성 주민 쉼터로
2022년까지 68억원 투자 예정

전주시는 16일 “성매매 업소가 밀집한 전주 서노송동 선미촌 일원(2만2760㎡)을 문화·예술인들이 창작 활동을 벌이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으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선미촌 문화 재생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성매매 업소들을 일방적으로 내쫓는 ‘불도저 방식’이 아닌 선미촌 주변 환경부터 매력적인 공간으로 가꿔 시민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하는 이른바 ‘햇볕 정책’ 방식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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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옛 전주역 주변에 형성된 선미촌은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규모가 줄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성매매 업소 49곳이 영업 중이고 성매매 여성 8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선미촌은 왕복 6차선인 기린대로를 사이에 두고 전주시청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965만 명이 찾은 전주 한옥마을과도 불과 800m 거리에 있다. 전주고와는 100m도 채 안 된다. 대규모 사창가가 도심 한가운데 있다 보니 전주 이미지를 먹칠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전주시는 집창촌을 문화예술촌으로 바꾸는 이 사업을 위해 오는 2022년까지 68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 4월과 이달 초에 각각 1억6000만원과 4억원을 들여 옛 성매매 업소 건물 두 채(총 4필지 628㎡)를 사들이며 물꼬를 텄다. 이들 건물은 예술인들이 작업실이나 전시회장으로 활용한다.

조형예술가 소보람씨가 오는 10월 이 가운데 한 건물에서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이란 주제로 설치 미술전을 할 예정이다. 9~10월엔 ‘쪽방의 기록’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열린다. 11월에는 여성 인권과 성매매를 주제로 한 미디어 아트전, 12월에는 블로거나 여행작가를 초청해 한 달간 쪽방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이 잡혀 있다.

전주시는 1~2평짜리 쪽방 10여 개가 다닥다닥 붙은 여인숙 형태는 그대로 보존할 계획이다. 시민들이 선미촌의 어두운 역사를 곱씹을 수 있는 ‘기억의 공간’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다.

최근 전주농협에 빌려준 선미촌 내 시유지(188㎡)의 임대 기간이 끝남에 따라 이곳에 ‘포켓 공원’도 조성한다. 잔디와 키 작은 관목을 심어 시민 쉼터로 꾸미면 은밀히 이뤄지는 성매매 영업도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게 전주시의 판단이다. 같은 맥락에서 선미촌의 가로등 밝기를 높이고 미로 같은 골목에 폐쇄회로TV(CCTV)도 설치한다.

일각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을 선미촌에서 내보내면 성매매 업소가 주택가 등으로 옮겨가는 ‘풍선 효과’를 우려한다. 전주시는 이를 막기 위해 여성자활센터와 연계해 성매매 여성들의 직업 전환을 도울 계획이다. 또 이들을 지원할 조례 제정도 준비하고 있다.

박선이 전주시 사회적경제지원단장은 “선미촌 곳곳에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들면 사창가를 기피하던 시민들도 모이게 될 것”이라며 “업주들과는 천천히 공감대를 형성하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성매매 업주들은 당장 공개적으로 반발하지는 않고 있지만 ‘생존권 사수’를 외치고 있다.

강종민 선미촌 비상대책위원장은 “전주시의 사업 취지엔 공감하지만 생계가 걸린 문제라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급작스럽게 밀어붙이기보다 2020년까지 단속 등 유예 기간을 주면 자율적으로 업종을 바꾸든지 폐업하겠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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