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은 사진작가 임수식(42)씨가 10년을 따라다닌 피사체다. 2007년부터 370여 명의 책장을 찍었고, 그 중 150여 점을 책장 사진 연작 ‘책가도’ 로 만들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책가도’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했던 그가 이번엔 책 『책가도』(카모마일북스)를 펴냈다.
“작품 이름에선 드러나지 않았던 책장 주인들 이야기를 책을 통해 들려주고 싶었다”는 그를 서울 부암동 ‘공간291’에서 만났다. 그가 뜻맞는 사진작가 몇몇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2014년 문을 연 전시장이다.
- 작품 제목이 ‘책가도 001’부터 시작해 번호만 바뀐다.
- “선입견에 따라 작품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장 주인의 이름을 제목에서 숨겼다. 전시회에서도 책장 주인에 대한 정보는 없앴다. 관람객들이 책장에 꽂힌 책 제목을 읽어가면서 ‘어떤 사람이 이 책들을 통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충분히 생각하도록 하고 싶어서였다. 책 틈에 놓인 소품이나 옛 사진 등을 단서 삼아 책장 주인을 짐작해보는 재미도 크지 않나. 한번은 어느 관람객이 ‘이건 김윤식 평론가 책장인 것같다’고 맞춰 놀란 적도 있다.”
그가 책에서 밝힌 책장 주인 중엔 내로라 하는 유명인이 상당수다. 김훈·황석영·한강·서영은·김용택·김홍신·이외수 등 문인들과 정병규·조세현·윤광준 등 예술인들이 그에게 책장을 공개했다. 부산 추리문학관, 일본 북해도미술관, 서울 통의동 류가헌 등의 서재도 그의 책가도에 등장한다.
- 책장 사진을 계속 찍는 이유는.
- “책장은 책장 주인 내면의 얼굴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안정효 소설가의 책장엔 먼지 한 톨 없었고, 디지털스토리텔링에 관심 많은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의 책장은 더없이 아날로그적이었다. 국문학자 고 김열규의 서재는 마치 1980년대에서 멈춰있는 것 같았다. 또 남북한 책이 섞여있는 일본 교토 조선중고급학교 도서실에선 분단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기록에 대한 의무감도 책가도 작업을 계속하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면서 책장은 책 주인과 함께 변하고 소멸한다. 그 ‘변해가는 얼굴’을 책가도로 남기고 싶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장으로 독문학자 전영애 서울대 교수의 책장을 꼽았다. “책이 진짜 주인인 책장”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사진작가 구본창의 책장은 “책 주인의 취미와 관심사가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사대부의 책가도와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책장 사진 연작 ‘책가도’ 낸 임수식 작가
“책장은 주인 내면의 얼굴…저마다 다른 모습”
김훈·황석영·한강 책장 등 150여 점 담아
그는 “책가도 연작을 평생에 걸쳐 1000개까지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처음에 작품 번호를 세자릿수로 정해놓아버려 더 이상은 못한다”는 농담도 했다.
그의 책가도 작업은 간단치 않다. 책장 한 칸 한 칸의 사진을 그 칸의 책이 가장 잘 보이는 각도로 찍어 한지에 인쇄한 뒤, 이를 조각보 꿰매듯 손바느질로 이어붙여 작품을 만든다.
한지는 조선 후기 널리 유행했던 옛 그림(책가도)의 깊이를 사진예술로 표현하기 위해 그가 심사숙고 고른 소재다. 작품 크기는 대략 80호(145㎝×112㎝) 정도다. “책가도에선 책 제목이 잘 보여야 한다”는 그의 고집이 작품 크기를 키웠다.
- 손바느질에서 어떤 효과를 기대하나.
- “작품에 시간이 많이 들어가면 에너지가 생긴다. 책가도 작품 하나 바느질하는 데 40일 넘게 걸릴 적도 있었다. 좌골신경통까지 생겼지만, 손바느질을 하면서 사진 속 책 제목들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그 책장 주인의 생각을 읽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책가도는 만드는 과정도, 보는 과정도 모두 ‘읽는 작업’이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