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치기 18년째…"꽃따라 꿀찾아 전국을 날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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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사람도 벌처럼 산다면 이세상이 정말 살만한데가 될끼라예』
18년째 꿀벌에 파묻혀 살고 있는 「벌 아지매」김수선씨(62·경남 거창군 거창읍상동 44의6)는 꿀벌의 성실성과 책임감에 대해 「자식자랑」하듯 설명한다.
김씨가 늘그막에 할 일 없이 지내게될까 두러워 벌통 2개를 마련할 당시만해도 양봉을 생업으로 삼겠다기보다 소일거리를 준비한다는 생각이었으나 이제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재미와도 비길 수가 없게 됐다. 김씨가 양봉에 본격적으로 매달리려 하자 남편이 벌통을 불살라 버리겠다며 노발대발한 때도 있었으나 김씨의 끈질긴 설득 끝에 「꽃이 만발한 곳이 바로 나의집」인 떠돌이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김씨가 유채꽃이 만발하는3월 중순이면 제주도로 건너갔다가 경남일대의 과수원지대로 와서 화분을 받고나면 아카시아철. 남부지방에서부터 차차 북으로 벌통을 옮겨 놓으며 아카시아 꿀을 뜬다. 밤나무꽃철이면 경남 하동지방으로 갔다가 강원도 오모산의 피나무꽃, 그리고 각지역의 싸리꽃 꿀까지 뜨고 나서 10월에 집으로 돌아오면 약 7개월에 걸친 김씨의 천막생활이 끝난다.
『가장 아름다운 곳만 찾아다니는 낭만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점점 치열해지는 밀원싸움때문에 마음을 상하기 일쑤』라는 김씨. 양봉업자는 나날이 는는데 비해 아카시아나무를 베어버리고 꽃이 한창일때 농약을 뿌리는 등으로 밀원이 계속 줄어 그런다툼은 거의 불가피하다며 안타까와 한다. 따라서 충북일부 지역처럼 새 길가에 아카시아나무로 가로수를 심으면 양봉뿐 아니라 꽃가루받이가 활발해져 농작물 수확을 늘리는데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다.
김씨는 요즘 비용이 너무들어 제주도에는 건너가지 않고 산란기를 앞둔 꿀벌에 화분을 먹이며 「벌식구」를 늘릴 준비중. 겨울에는 4만∼5만마리의 벌이 들어 있는 벌통이 80개쯤 되지만 한여름이면 1백50여개로 늘어난다. 해마다 차이가 크지만 그 벌들이 1년내 모아들이는 꿀은 대개 10말(두) 들이 드럼통 4개를 채우는 정도.
생활력을 키우는데도 화분이나 로열 젤리처럼 효과가 빼어난 양봉을 김씨가 권해서 시작한 농촌 여성도 l7명에이른다.
김씨는 『적어도 칠순까지, 힘자라면 더 오랫동안 「벌 아지매」로 지낼 생각』 이라며 활짝 웃는다. <거창=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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