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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검찰 출신 민정수석으론 민심 못 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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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번 주 중으로 예상되는 개각에서 각 부(部) 장관들의 거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진퇴 여부다.

검찰 독점···중립성·인사 잡음 초래
소통·통합 위해 검사 집착 버려야
김대중·노무현 학계·시민단체 출신 기용

 홍만표·진경준 전 검사장의 부정축재 사건에 이은 우 수석의 각종 비리 의혹이 정쟁(政爭)을 유발하고 국정운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 수석은 홍 전 검사장과 사건을 함께 맡으면서 ‘몰래 변론’을 한 의혹을 사고 있다. 특히 넥슨 측에 처가의 건물을 파는 과정에 진 전 검사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비롯해 농지법 위반과 탈세, 의경 아들의 특혜 보직 변경 등 갖가지 추문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 수석이 장관 후보자들의 재산 형성 과정과 이력, 도덕성 등을 검증한다는 것은 한편의 슬픈 희극과도 같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같은 비판 여론을 의식해 측근들의 의견을 수집 중이라고 한다. 법조계에선 벌써부터 우 수석의 후임자를 놓고 하마평이 나고 있다. 하지만 거론되는 인사들의 대부분이 대구·경북 출신의 전·현직 검찰 고위 간부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요구했다는 지역 균형과 탕평 인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민은 우 수석 사태를 계기로 민정수석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민정(民情)이란 말 그대로 국민의 생활형편과 사정, 즉 민심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영어로 ‘시민 관련 업무’를 뜻하는 시빌 어페어(civil affair)로 번역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정수석의 역할 중 하나는 국민의 여론과 민심 동향을 파악하고, 이를 국정에 반영토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직자 및 시민사회의 기강과 관련된 업무, 대통령을 위한 법률 보좌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선 검찰 출신들이 민정수석을 독점하며 검찰과 경찰·국세청 등 사정(司正)기관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역할에 치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사정 피로 정국’을 초래하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와 인사 잡음 등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청와대의 각종 정책과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나타났고, 국민은 정권에 실망하게 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민정수석 본연의 기능을 되찾겠다며 학계, 시민단체, 변호사 출신 등을 임명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광복절을 맞아 밝힌 것처럼 국민은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를 원치 않는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변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1000억원대의 건물을 거래하고, 법인 명의의 최고급 외제차를 굴리는 수백억원대의 자산가가 ‘정의사회’를 외치는 것을 국민은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겠는가. 민심과 시대정신은 뒤로한 채 공명심만 내세워선 안 될 것이다. 민정수석은 서민들 삶의 현장을 사심 없이 투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할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