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북·대일 메시지 없는 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의 어제 광복 71주년 경축사는 국내 문제에 많은 비중을 뒀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기 비하 풍조와 경제위기를 돌파해 제 2의 도약을 이루자는 내용이 연설의 절반 이상이다. 구체적 대북 메시지에 더 많은 비중이 실린 지난해 경축사와 크게 다르다. 역대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대북·대일 정책의 새 방향을 제시하는 통로로 활용한 점에 비춰 봐도 이례적이다.

특히 북한에 대해선 취임 후 줄곧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제안했지만 이번엔 대화란 표현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핵 개발과 도발 위협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압박 기조만을 강조했다. 대일 메시지는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자”는 한 문장만 포함됐다. 대신 ‘할 수 있다’ ‘자신감’ ‘자긍심’이란 단어를 9차례나 동원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광복절이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날이란 점을 감안할 때 대북·대일 메시지의 빈곤은 적지 않은 고민의 방증이다.

박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지적했듯이 동북아 안보지형 변화는 엄중하고, 어느 때보다 전략적 사고가 절실한 시점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반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압박이 계속되면서 한·중 관계는 연일 위기가 거론된다. 소원했던 북·중 관계가 복원되고 러시아까지 손 잡으면 동북아 정세가 요동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취임 후 아무런 접촉이 없는 일본을 향해 좀 더 적극적인 외교적 언급과 입장이 나와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압박과 대화란 투 트랙 기조를 유지하면서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획기적 방안을 제시하는 게 옳은 길이다. 큰 길이 막혔다면 우회로나 작은 통로를 뚫어 돌파구를 내겠다는 고심과 담대한 발상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박 대통령은 많은 희망을 얘기했다. 하지만 구체적 전략과 실천 의지가 보이지 않는 말의 성찬은 희망이 아니다. 내치든 외교든 목표 달성을 위해선 대통령의 실천 역량과 추진 의지가 절대적이다. 그게 희망의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