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드] 양궁과 수영 금메달 개수 11배 차이는 한국의 양궁 독점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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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코리아하우스에서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표팀은 28년 만에 양궁 전종목을 석권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4 VS 46

2016 리우 올림픽 양궁과 수영 종목에 각각 걸려 있는 금메달 개수다. 여기서 잠깐. 수영 금메달이 양궁 금메달보다 11배 이상 많다니. 28년 만에 양궁 전종목을 석권했다는 기쁨을 잠시 접고 냉정히 따져 보자. 양궁 남녀 단식과 단체전을 더하면 금메달은 모두 4개다. 주몽이 환생해 올림픽에 출전하더라도 금메달 3개 이상을 목에 걸 수 없다. 반면 미국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리우 올림픽에서만 남자 혼계영 400m 등에서 금메달 5개를 목에 걸었다. 조금 억울한 마음이 생겼다면 이번 올림픽, 제대로 보고 계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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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주몽의 한 장면. 배우 송일국이 주몽을 연기했다.

양궁에 걸린 금메달은 왜 4개에 불과할까? 양궁과 수영 종목의 올림픽 역사를 뜯어보면 답이 보인다. 양궁은 단일체계다. 다시 말해 단식과 단체전 모두 70m 거리에 있는 과녁에 화살을 쏴 점수를 매긴다.

반면 수영은 영법에 따라 종목을 세분화했다. 자유형은 50m, 100m, 200m, 400m, 800m(여자), 1500m(남자)에 각각 금메달이 걸려 있다. 선수들은 배영, 평영, 접영 100m와 200m에서도 금메달에 도전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물속에서 영법을 바꾸는 개인혼영 200m, 400m가 있다. 계영 400m, 800m 그리고 혼계영 400m. 심지어 수영마라톤 10km에도 출전할 수 있다. 이밖에도 다이빙과 수구 등이 있다. 수영은 양궁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종목 세분화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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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를 목에 건 마이클 펠프스.


올림픽 초기 양궁과 수영 금메달수 차이 없어

초기 올림픽에서 양궁과 수영은 금메달수가 비슷했다. 양궁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건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에서다. 당시 양궁에 걸린 금메달은 모두 6개로 리우보다 많았다. 양궁은 종목을 33m, 50m 등으로 나눴다. 당시 올림픽에는 남자 궁사들만 참가할 수 있어 여자부 경기를 열리지 않았다. 수영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자유형 100m, 500m, 1200m 등에서 금메달 4개가 걸려 있었다. 양궁과 마찬가지로 여자부 경기는 열리지 않았다. 제2회 파리 올림픽에서 배영과 잠영이 추가되면서 금메달은 7개로 늘었다. 초창기 올림픽 금메달 개수를 따지면 양궁과 수영은 큰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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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은 금메달 야금야금 늘려양궁은 제자리 걸음

양궁과 수영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양궁은 192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8회 올림픽부터 1968년 멕시코 올림픽까지 정식종목에 포함되지 못했다. 양궁이 다시 정식종목이 된 건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부터다. 뮌헨에선 단체전은 진행되지 않았고 남녀 단식만 열렸다. 반면 수영은 단 한 차례도 정식종목에서 제외된 적이 없었다. 수영은 종목 세분화에 성공하면서 야금야금 금메달을 늘렸다. 이런 흐름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내부에서 작동하는 강대국 파워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정설이다. 이른바 올림픽 메달의 정치학이다. 수영 강국인 미국과 호주의 목소리가 특히 컸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여자 수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건 호주의 입김 때문이었다.

경기단체 영향력과 동호인층도 금메달 개수에 영향을 미친다. 국제수영연맹은 1908년 설립됐고 국제양궁연맹은 그보다 늦은 1931년 만들어졌다. 동호인층을 비교하면 수영이 양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텁다. 국제수영연맹은 이런 파워를 바탕으로 자유형에만 있는 50m 종목을 배영과 평영 등으로 넓히려 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육상연맹이 이에 반대하고 있어 IOC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육상연맹은 국제수영연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힘이 세다.

한국의 양궁 메달 독점이 종목 세분화 가로막아

한국의 양궁 파워는 양궁 금메달 개수가 제자리 걸음인 또 다른 이유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이후 한국은 양궁 종목에 걸린 총 40개의 금메달 중 23개를 차지했다. 한국 다음으로 금메달을 많이 가져간 국가는 미국으로 모두 8개를 획득했다. 이어 이탈리아(2개), 중국(1개), 구소련ㆍ핀란드ㆍ우크라이나ㆍ호주ㆍ프랑스ㆍ스페인(1개) 순이다. 시장에 비유하자면 한국의 독점 시장이 3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IOC가 양궁 종목 세분화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엔 한국 양궁의 딜레마도 작동한다. 종목 세분화를 위해선 독점 구조를 깨뜨려야 하지만 올림픽 효자 종목인 양궁을 마냥 포기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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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파운드활. 도르래가 장착해 쉽게 당길 수 있어 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도쿄 올림픽에서 양궁 혼성 종목 추가 기대

그럼에도 양궁 종목 세분화 가능성은 열려있다. 문형철 양궁대표팀 감독은 지난 13일 리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림픽 금메달이 도쿄 올림픽에서는 혼성 종목이 추가돼 하나가 더 늘 것 같다”고 말했다. 남녀 혼성 종목이 추가되면 양궁 금메달은 5개가 된다. 국제양궁연맹은 컴파운드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부터 아시안게임 역사상 최초로 컴파운드 양궁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현재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사용하는 활은 리커브활이다. 컴파운드활은 도르래, 확대렌즈, 격발장치를 장착해 약한 힘으로도 활을 당길 수 있어 동호인들이 선호한다. 컴파운드활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다면 양궁 종목 금메달 개수는 2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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