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대포통장 사기…구직자도 모자라 외국인, 법인까지 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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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우리 회사 신입사원 공채에 합격하셨습니다. 급여계좌 개설과 출입증 발급을 위해 통장과 체크카드를 보내주세요.”

취업준비생이 이런 전화를 받는다면 절대 응해서는 안 된다. 보이스피싱으로 가로챈 돈을 인출하기 위한 대포통장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상반기 대포통장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취업사기를 비롯한 대출빙자형 사기가 1만4964건으로 전기대비 12.6% 늘었다고 15일 밝혔다. 반면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니 국가가 공인한 다른 통장에 자금을 이체하라”는 식의 국가기관(검찰ㆍ금감원 직원 등) 사칭형 사기는 6591건으로 전기대비 24.9% 줄었다. 대포통장 사기범들이 검찰ㆍ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사기 수법이 많이 알려지자 대출빙자 사기로 선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포통장 사기의 첫째 타깃은 취업준비생이다. 취업에 대한 열망이 큰 데 비해 사회생활 경험이 없어 금융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파고드는 범죄다. 취업사이트에 구인 광고를 게시한 뒤 구직자의 연락이 오면 “취업이 됐다”며 통장과 체크카드를 요구하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유령법인 통장을 만들면 수수료를 주는 수법도 횡행하고 있다. 취업준비생 등에게 접근해 “당신 명의로 법인을 만든 뒤 통장을 개설해 건네주면 통장 1개당 100만원을 주겠다”는 식이다. 법인 통장이 대포통장 근절대책에서 제외된 점을 노린 범죄다. 통장 개설시 재직증명서 등 여러 증빙서류가 필요한 개인계좌와 달리 법인통장은 주민등록등본, 인감도장, 임대차계약서 등의 기초 서류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이로 인해 올해 상반기 법인 명의 대포통장은 752개로 전기 대비 18.1% 증가했다.

이와 함께 대출 광고를 한 뒤 대출을 신청한 사람에게 “대출을 하려면 신용도 상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거래실적을 대신 올려주겠다”며 통장 양도를 요구하는 수법을 쓰는 사기범도 많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 명의로 대포통장을 개설하는 수법까지 나왔다. 지난 4일 일본인 19명 명의로 대포통장 52개를 개설한 사기범이 검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금감원은 대포통장 신고 포상금을 최대 5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각 금융회사에 법인 통장 개설시 실제 사업 영위 여부를 확인하는 등 내부 통제 절차를 강화하도록 했다. 외국인 대포 통장 개설을 막기 위해 외국인 계좌를 개설할 때는 은행연합회에 여권번호를 등록해 금융회사들이 공유하도록 했다. 외국인이 단기간 다수의 계좌를 개설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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