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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의 사람 냄새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성공’한 배우 말고 ‘성장’했다 말하고 싶어지는 배우. 조진웅에게는 여전히 ‘사람’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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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으로 출발해 ‘미친 존재감’ 되더니, 어느새 ‘믿고 보는 조진웅’으로 거듭났다. 이제 막 40대 초반을 넘어선 ‘아재’ 조진웅은 갈수록 ‘핫’한 스타가 되어가고 있다. 그의 조무래기(?) 시절부터 톱 배우가 된 지금까지 그를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은 최근 조진웅의 이 같은 성공에 “드디어 때가 왔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축하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만 도는 뜬소문이나 안 좋은 뒷말, 소위 질투 같은 반응은 찾아볼 수 없다. 이유가 있다. 조진웅은 배우로서의 ‘성공’보다는 사람으로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 조진웅의 의리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진웅의 소속사 대표가 찾아왔다.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예요” “제2의 송강호가 될 거라고 자신해요”라며 그를 소개했다. 당시 그의 외모만 보고 속으로 ‘연기를 정말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 그때가 MBC 드라마 ‘하얀거탑’이 크게 히트를 쳐 김명민이 엄청난 하이라이트를 받고,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새로 발견했던 시기다.

지금의 조진웅이야 슈트 쫙 빼입고 칸 영화제 레드 카펫에 서고, 예능 ‘런닝맨’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며, 가만히 서 있어도 배우 포스가 폴폴 나는 ‘멋진 남자’가 됐지만, 당시에는 그저 ‘지켜봐야 할 배우’(라고 소속사에서 주장하던) 정도였다.

2009년 방송된 KBS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만 봐도 그렇다. 100kg이 넘는 거대한 체구에 서툰 한국어 말투로 “저 연기자 어디서 왔냐”는 호기심을 끌었던 정도. 당시만 해도 지금의 멋진 조진웅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조진웅이 좀 달랐던 건 30대 청년이었음에도 멋있어 보이려 애쓰지 않았고, 단 한 장면이라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연기를 하길 원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매끈하게 잘생긴 얼굴도 아닌 그였지만 왠지 모르게 ‘한번 지켜볼 만하네’ 하는 묘한 기대감이 생겼다.

그러다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서 조진웅에게 다시 한 번 관심이 갔다. 배우로서의 성공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배우라는 점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 사건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조진웅의 소속사인 사람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지금이야 조진웅을 필두로 이제훈, 이하늬, 윤계상, 변요한, 한예리, 권율 등 핫한 톱 배우가 대거 포진된 기획사지만, 그때만 해도 연기 잘하는 조연 배우들로 구성된 작은 신생 회사였다.

당시 이곳에는 조진웅 이외에 점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연예인 A가 있었다. 기획사와 연예인의 관계가 늘 완벽하게 만족스럽다면 좋겠지만, 실상은 크고 작은 트러블이 있기 마련이다.

요약하자면 배우 A는 회사에 불만이 많았고, 급기야 아직 데뷔를 못 한 신인들에게까지 “소송을 걸어서 회사를 나가자”며 부추겼던 사건이다. 그 일로 A와 연기자 준비생 4~5명이 한꺼번에 회사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똘똘 뭉쳐 함께 일할 것 같던 그들은 나가자마자 바로 흩어졌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A뿐이다.

물론 각자의 입장 차이가 있겠지만, 미래를 바라보며 함께 일했던 배우가 하루아침에 소송을 걸고 집단으로 나가는 일을 당하면 말 그대로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그때 조진웅의 진가가 발휘됐다. 몇몇 어린 친구들이 A의 말에 휘둘렸지만 조진웅과 이제훈은 달랐다. 조진웅은 “난 이 회사를 지킬 것이다. 왜냐고? 회사에 대한 의리다.

나를 알아봐주고 키워준 곳이니까”라며 남았다. 막 몇몇 영화에서 조연을 맡았을 뿐 이름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이 배우는 ‘의리’ 하나로 휘청거리는 회사를 지켜냈고, 막내 이제훈 역시 조용히 옆에 남았다. 그때 조진웅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나가버렸다면 지금의 이 탄탄한 ‘사람엔터테인먼트’는 없었을 것이다. 가끔 조진웅에게 그때 왜 그랬느냐고 묻는다. 그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활동하게 된 건 날 알아봐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나 혼자 잘났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이게 거짓말 같죠? 이제 막 10년 지났으니까 앞으로 10년 더 지나면 제 마음을 알아줄까요?(웃음)

전 유명해지려고 배우를 시작한 게 아니라 정말 연기가 좋아서, 그리고 사람이 좋아서 첫발을 들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하든 나를 빛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잊지 않으려고 해요.”

영화계는 익숙한 사람들과의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조진웅은 일단 어느 배역이든 잘 소화해내고 현장에서 늘 스태프에게 잘하는 데다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니 많은 관계자가 아끼고 찾을 수밖에. 지금의 조진웅은 이러한 인간 됨됨이가 만들어낸 폭발적 결과물이다.


| ‘아내 바보’ 조진웅



한결같은 점은 또 있다. 바로 그의 여자 친구. 데뷔 초만 해도 ‘조진웅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기삿거리가 안 됐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고, 조인성, 강동원, 현빈 같은 꽃미남 한류 스타도 아니었으니까.

두 번째 만났을 때 “여자 친구 있어요?” 물으니 “네! 오래 사귄 여자 친구가 있어요. 너무 착해요. 그래서 든든하고 참 좋아요”라고 매우 남자답고 자신 있게 말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의 여자 친구는 소속사 식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소속사 대표는 “진웅이가 정말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있어요. 당장 결혼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라고 귀띔했다. 조진웅이 조금씩 유명해질 무렵 ‘여자 친구 기사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개 프러포즈를 했고, 2013년 결혼식을 올렸다. 유혹이 많은 연예계에서 일하면서 7년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에 골인한 그를 보며 ‘역시 조진웅답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했다.

현재 조진웅은 달콤한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조진웅을 찾는 곳이 너무 많다. 주연으로서 작품의 시작과 끝을 책임져야 하고, 여기저기 카메오 출연 제의도 빗발친다.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최근에는 tvN 드라마 ‘시그널’로 안방극장까지 점령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CF 스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제는 너무 큰 스타가 돼버렸는데 예전처럼 친숙한 분위기가 아니면 어쩌지?’ 내심 걱정하고 있을 때, 영화 ‘아가씨’ 언론 시사회에서 그를 따로 만날 수 있었다.

기자와 연예인이라는 관계가 쉽지만은 않다. 어느 순간 진심을 털어놓는 것 같지만 경계할 수밖에 없고, 가까운 친구처럼 허물없다가도 진심으로 편해지기까지는 서로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이제는 조진웅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사화되는 만큼, 그도 조심스러워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가 다짜고짜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저 이번에 (아내에게) 복수하려고 했는데…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너무너무 뿌듯하더라고요! 배우 하길 정말 잘했어요.”

아내에게 복수라고? 조진웅은 지난 5월 폐막한 제69회 칸 영화제에서 ‘아가씨’가 경쟁부문에 올라가게 되면서 레드 카펫을 밟았다. 그는 영광의 순간을 아내와 함께 누렸다. 첫 칸행을 부부가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아내는 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래서 가끔 영화 속에서 유럽 장면이 나올 때면 ‘저기는 커피가 맛있어’ ‘저기 경치가 정말 좋아’ 하면서 아는 척을 하더라고요. 전 한 번도 못 가봤는데 말이죠(웃음).

칸 영화제 소식이 들렸을 때 ‘아싸~ 나도 이제 유럽에 간 걸 자랑할 수 있겠다! 복수해야지’ 생각했는데, 아내가 한마디 하더라고요. ‘최민식 선배는 아내랑 같이 칸 영화제 갔던데….’ 그 말을 듣는데 만감이 교차했어요. ‘그래. 같이 가야겠다!’ 솔직히 굉장히 뿌듯했죠. 아내와 칸 해변 곳곳을 돌아다녔고, 레드 카펫까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에요.”

배우라면 평생 꿈일 칸 영화제.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칸 영화제 참석이 대단한 목표는 아니었어요”라고 했다.

“그냥 아내와 동료들, 감독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좋았죠. 제 꿈이 뭔지 아세요? 평생 대중에게 기억이 남을 만한 연기를 보여주는, 함께 호흡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가식 아니에요. 아주 먼 훗날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느끼게 해드릴게요. 그때까지 전 또 열심히 달릴 거예요.”

조진웅의 지금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기억하기로 했다. 연기하는 배우와 기자의 관계에 앞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그를 만날 때면 전달되는 따뜻한 기운과 왠지 모르게 솟아오르는 파이팅을.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조진웅이라는 배우를 말이다.

기획_성영주, 남혜연(스포츠서울 대중문화부 기자)
여성중앙 2016.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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