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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 박상영 “힘 얻었다는 수험생 문자 가장 기억에 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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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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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 펜싱 에페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박상영(21·한체대)은 하루새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펜싱 금메달 기적의 검객 인터뷰
밤새 SNS 1500건 알람소리 잠 설쳐
성공 뒤엔 실패 오지만 성장 끝 없어
14일 단체전도 후회없는 경기 할 것
고3 때부터 선수촌 들어가 합숙훈련
한국 가면 운전면허부터 따고 싶어

그는 지난 10일 브라질 리우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2라운드까지 9-13으로 뒤져 있었다. 상대에게 2점을 빼앗기면 패하는 상황에서 그는 '할 수있다. 할 수 있다'고 되뇌었고, 실제로 기적이 일어났다.  하룻 밤사이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1500개가 넘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의 경기를 지켜본 많은 팬들이 그의 경기를 보며 '희망을 얻었다'고 했다.

왼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올림픽을 6개월 앞둔 시점까지 참가 여부가 불투명했던 그는  간절히 바라던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뤘다. 세계랭킹 21위에 불과했지만 자신보다 강한 상대들을 차례로 만나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결승에서는 21살이나 많은 백전노장 게자 임레(42·헝가리)를 상대해 10-14로 뒤지다 15-14로 승부를 뒤집었다. 기적이 이뤄지는 과정 역시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그를 11일 선수촌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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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따고 연락을 많이 받았나.
"SNS 메시지가 1500개 정도가 왔다. 400개를 확인하고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2배가 넘게 더 와있더라. '지금 수능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경기를 보면서 정말 많이 힘을 얻었다'는 팬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
“사실 휴대폰 메시지 알람이 계속 울려서 제대로 잠을 못 잤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입 모양이 화면에 잡혔다.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됐는데.
“평소 자주 하는 말은 아니었다. 강한 상대에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나왔다. 그 뒤에 보이지 않던 상대방 선수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임레가 ‘10-14에서 갑자기 전술이 바뀌어 당황했다’고 하던데.
“10-14가 되면서 상대가 경기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역으로 공격 속도를 늦췄더니 상대가 생각대로 반응했다. 내가 만든 덫에 걸렸다.”
어머니하고는 통화는 했나.
“기자분들이 전화를 많이 해서 어제는 연결이 안 됐다. 오늘 아침에서야 통화했는데 감정이 많이 가라 앉으셨는지 울지 않더라.(웃음) 담담한 목소리로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기적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많다.
“2013년 대표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 단체전 경기에서 스위스에 10점 이상 뒤지고 있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내가 실수를 많이 했다. 형들이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고 말해준 게 기억난다. 올림픽은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메달은 신이 내려준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난 ‘할 수 있다’고 외쳤고, 신이 답을 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특정 종교를 믿는 건 아니다.”
귀국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 고3 때부터 선수촌에 들어가 합숙훈련을 했다. 운동만 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어린 시절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고 들었다.
“부모님이 가정 경제 이야기를 전혀 안 하셨다. 학원비가 밀리고, 점점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형편이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펜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다.”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이뤘다.
“올림픽 메달을 따면 큰 관심을 받지만 한 달쯤 지나면 관심이 줄어든다고 들었다. 4년 뒤 올림픽 때는 오히려 부담이 된다고 하더라. 나는 성공보다 성장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성공은 뒤에는 실패가 기다리고 있지만 성장은 끝이 없다. 나는 계속 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평소 책 읽는 걸 좋아하나.
“아버지가 자주 책을 선물로 주신다. 직접 책 표지 뒷장에 글을 남겨주신다. 이번 올림픽에는 『왓칭』이라는 책을 들고 왔다. 생각하면 모든 게 이뤄진다는 내용이다. 원래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이번 올림픽 때는 긴장이 안됐다. 준비를 충실히 했고,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4일 단체전이 남았다. 2관왕을 기대하나.
“사실 나는 욕심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경기가 잘 풀린다. 2관왕 생각은 일부러 하지 않는다. 단체전에서도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 팀 선배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리우=김원·피주영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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