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누진제 한시 완화, 합리적 전기료 개편으로 이어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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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와 새누리당이 어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키로 했다고 밝혔다. 6단계 누진 구간의 상한을 각각 50킬로와트시(㎾h)씩 높여 요금 부담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러면 0~100㎾h인 1단계가 0~150㎾h로 바뀌고 2구간도 101~200㎾h에서 151~250㎾h로 상향된다. 최고 요금을 적용받는 구간도 현재 600㎾h에서 650㎾h로 높아진다. 당정은 2200만 가구가 요금의 20%가량인 4200억원을 아낄 수 있다고 추산했다. 누진제 완화는 7월 사용분부터 소급해 9월까지 적용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난히 길고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국민들의 고통이 다소 덜어질 것이다. 지난해보다 요금 할인을 받는 국민이 많아지고 할인 폭이 커진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어디까지나 임시처방이다. 정부는 누진제 완화 불가 방침을 고수하다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나서고서야 마지 못해 누진제 완화를 받아들였다. 국민의 분노와 여론을 무시하고 시간을 질질 끌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린 셈이다. 당장 에어컨을 켜지 못한 채 무더위를 고스란히 견뎌온 국민들이 허탈감을 느끼게 됐다.

 이런 혼선을 해마다 반복할 순 없다. 여름 날씨에 따라 선심 쓰듯 요금을 깎아주는 행태는 비정상이다. 전기요금 체계를 종합적으로 개편해 논란 소지를 아예 없애는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 가정용 요금을 다소 올리더라도 너무 촘촘한 가정용 전기 누진 단계와 12배에 달하는 요금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세 단계 이내에서 두 배까지 차이를 두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전력 수요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산업용·업소용 전기 과소비를 억제할 장치도 고려해야 한다. 요금 개편으로 불이익을 볼 수 있는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에게 전기 이용권(바우처)이나 보조금을 주는 배려도 필요하다. 산업용을 중심으로 한 전력 과소비를 억제하면서 효율성·형평성이 조화를 이루는 합리적 전기료 개편 논의를 시작할 때다.